부다페스트 여행 둘째 날: 마차슈 성당, 어부의 성채 (2011-12-25)

신발은 밤새 잘 말랐다. 동유럽의 겨울은 바깥이 충분히 추워서인지 어느 실내든 들어서면 따뜻한 기운이 충만했다. 밤새 뜨끈하게 틀어놓은 히터가 신발은 물론이고 옷가지에 스민 습기를 모두 먹어 치웠다.

둘째 날에도 비가 온다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 질척해지는 신발을 신고 거리를 걸어야 할 터였다. 일어나니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다. 방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외쳤다. 잠들기 전 내일의 날씨가 맑기를 잠깐 기도했던 것도 같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둘째 날 아침. 객실 창 밖으로 내다본 풍경. 다행히 비오는 날씨가 아니다.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은 오묘한 느낌을 준다. 처음 보는 창 밖의 풍경이 비현실적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바라보던 곳이 아니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 부다페스트에서 맞는 둘째 날 아침의 창 밖 풍경은 빗방울이나 안개가 시야를 방해하지 않아 구체적이기도 했다.

직장인이 되니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경우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뉘었다. 출장지에서의 아침이거나 여행지에서의 아침이거나. 출장과 여행은 미지의 곳을 경험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당연하게도 많이 다르다. 출장은 마쳐야 하는 업무의 부담과 출근과 퇴근이라는 일상의 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거실에 두었던 다람쥐 쳇바퀴를 잠시 뒤뜰로 옮겨 둔 것처럼, 보이는 배경은 달라도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현실만은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일말의 부담감을 안고서, 마음이 급한 아침을 맞이한다. 그에 반해 여행지서 맞는 아침은 여유롭다. 꼼꼼한 계획 없이 출발한 여행이라면 더 그러하다.

침대에서 뒹굴 거리다 호텔조식 마감 시간을 넘기지 않을 때 즈음 천천히 일어났다. 식당의 테이블은 절반 정도 차 있었다. 나처럼 게으른 여행객이 많다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



접시에 음식을 적당히 담아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유럽 어느 호텔에서도 볼 수 있는 햄과 치즈, 우유와 씨리얼, 빵과 과일로 이루어진 아침식사였지만 먹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주변으로부터 영어, 독일어, 중국어, 한국어가 들려왔다. 모두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가족 혹은 친구들과 여행 온 사람들 같았다. 식당 안의 인테리어와 조명이 밝아 전날 비 오던 날씨의 우중충한 저녁 풍경과 매우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호텔을 나섰다. 날씨가 무척 좋다.



식사를 마치고 오전 느지막이 호텔을 나섰다. 목적지는 어부의 성채(어부의 요새, Halászbástya).

호텔 근처에서 지하철을 타고 M2 Széll Kálmán tér 역에서 내린다. 휴일이라고 유난히 붐비거나 하는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M2 Széll Kálmán tér 지하철 역.



어부의 성채로 올라가는 길을 헤매다 일군의 사람들을 쫓아갔다. 버스 정류장의 표지판을 보고 목적지까지 올라가는 버스를 탔다. 마을버스 같은 작은 버스였다. 버스가 구불구불 경사를 따라 완만한 지역에 다다르자 웅장한 마차슈 성당(마티아스 성당, Mátyás templom)이 보였다.


마차슈 성당과 어부의 성채.



침략과 식민 피지배를 겪은 헝가리의 역사 속에서 고딕, 바로크, 이슬람 건축물의 특징들을 모두 경험하였다는 마차슈 성당은, 근대에 들어서야 원래의 고딕식 건물의 모습을 되찾았다 한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광풍은 이 건물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당시 파괴된 건물의 복구에 전후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는 글을 읽었다. 눈 앞에 보이는 성당은 오래 전 아문 상처를 가진 사람처럼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성당이 사람이었다면 수백 년 동안 흘린 눈물로 이미 눈물샘이 말라버리지 않았을까.

마차슈 성당 옆으로 어부의 성채가 있다. 다뉴브 강(두나 강, Duna, Danube)과 페스트 지역이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역사적 건축물들이 그러하겠지만, 성을 방어한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든 이곳이 이제는 이름난 관광지로 더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건축 당시의 사람들을 오래 전에 떠나 보낸 이 건축물이, 제 모습을 보겠다고 끝없이 밀려드는 새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중국인으로 보이는, 단체 신혼여행을 온 듯한 커플들. 어부의 성채에서 바라본 부다페스트.



어부의 성채에서 바라보는 부다페스트의 모습은 서울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의 그것과는 달리 아늑한 느낌이다. 대도시에서처럼 삐죽 삐죽 솟은 마천루 사이로 급히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은 느껴지지 않고(물론 이 곳에도 바쁜 사람들은 많겠지만), 그만그만한 높이의 건축물들이 과거의 모습을 잃지 않은 채 옆 건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풍경이 바라보는 사람의 피로감을 덜어준다. 도시 한 가운데에 흐르는 다뉴브 강도 그리 바빠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아직 오전. 날씨는 맑았는데 바람이 쌀쌀했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바람만 아니었다면 어부의 성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도시의 경치를 바라보고 싶었다. 겨울이 아닌 봄이나 가을처럼 외출하기 좋은 날씨에 다시 와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오늘을 그 때를 위한 사전 답사일로 여겨도 좋으리라. 가벼운 옷차림으로 부다페스트, 어부의 성채에 다시 오는 날을 상상하며 장소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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