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리뷰] 당신과 나를 찾는 여행 - ゲド戰記: Tales From Earthsea /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2006)

지브리의 2006년작 『게드전기』는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의 ‘어스시(Earthsea)’ 연작 중 3권 “머나먼 바닷가”와 4권 “테하누”의 내용을 서로 연결해 각색한 작품이다. 지브리 미술관의 관장으로 재직하다 『게드전기』로 애니메이션계에 데뷔하는 감독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는 그의 아버지이자 지브리의 얼굴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어스시’의 세계를 마침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에 짙게 드리워진 어슐러 르 귄의 영향은, 영화평론가 이상용이『게드전기』의 개봉에 맞춰 필름2.0에 기고한 “지브리 시간 속 용의 전설: 『게드전기』와 미야자키, 어슐러 르 귄의 세계”(2006년 8월 8일자 필름2.0)라는 특집기사에 잘 정리가 되어있다. 사실 부끄럽게도 나는 『게드전기』를 접하기 전에 작가인 어슐러 르 귄과 ‘어스시’ 이야기를 알지 못했는데, 나처럼 이 가상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아마도 『게드전기』가 낯선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는 가상의 세계 ‘어스시’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곧바로 주인공 아렌의 이야기를 향해 들어간다. 용이 출몰하고 동물들이 죽어가는 등 세계의 균형에 대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는 ‘어스시’의 모습이 잠깐 등장한 후, 알 수 없는 힘 때문에 국왕인 아버지를 살해하고 방황하는 왕자 아렌이 떠돌이 마법사 하이타카(はいたか: 새매 - ‘게드’의 다른 이름)를 만나는 장면이 이어진다. 뭔가에 불안해하고 생(生)의 허무함이 깃든 소년 아렌은 하이타카와 목적지 없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역시 세계의 불균형의 조짐이 보이는 마을 ‘호트타운’에 도착한 아렌은 병사들에게 쫓기는 소녀 테루를 구해주지만, 병사들의 복수로 오히려 그가 노예로 팔릴 위기에 처한다. 하이타카는 이런 아렌을 구해내서 오랜 친구인 테나의 집을 찾아가고, 일행은 그곳에서 소녀 테루를 다시 만난다. 한편 아렌을 놓친 병사들의 배후에는 쿠모(クモ: 거미)라는 마녀가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는데...

 


미야자키 고로는 지브리의 미래를 점칠 기준점이 될 이 데뷔작을 통해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게드전기』는 무심코 모험과 영웅이 기대되는 판타지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자신과 타인을 둘러싼 소년의 성장 드라마에 가깝다. 개성이 유행이라는 단어에 종속된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기계부품처럼 순응하는 자세가 삶의 안락함을 보장해준다고 믿으며, 모두가 타인의 삶을 좇으면서 행복의 실체를 잃어가는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게드전기』는 우선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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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의 정신을 잠식한 어둠은 그의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는데, 작품 내에서 결코 설명되지 않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은 우리들이 현실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것과 왠지 닮아있다. 그것은 결국 미래에 대한 불안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안, 그리고 점점 희미해지는 자아에 대한 불안감까지 포괄하는 복합적인 두려움이기에 오히려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렌이 그의 모험으로부터 이루어야 하는 것은 그 두려움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즉 아렌은 ‘자아’를 인지하고 찾아야만 하는데, 영화 속에서 각자의 자아로 상징되는 것은 그들의 진짜 이름이다. 마녀 쿠모가 레반넨이라는 이름으로 아렌에게 마법을 거는 것처럼, 각자 숨겨진 이름을 알리는 것은 서로의 정신(자아)을 공유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과연 진짜 이름(자아)은 어떻게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극의 후반부, 아렌을 구하는 테루는 불안감에 휩싸여 죽음을 고대하거나(아렌), 영생을 기다리는 것(쿠모) 모두 한번뿐인 삶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해 불안감에 빠져 있는 인물이라면,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마녀 쿠모는 결국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테루는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으며, 서로에게 삶을 부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인간의 삶이 한번뿐이기에 오히려 더 소중하다는 하이타카의 말과 연결되는 이 영화의 주제다. 그리고 여기에 자아(진짜 이름)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숨겨져 있다.


아렌과 테루가 레반넨과 테하누라는 각자의 진짜 이름을 서로 알려주는 것은 자아를 되찾음과 동시에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름이란 것은 누군가에게 불리기 전에는 의미가 없다. 자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결국 각자의 이름을 불러줄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게드전기』의 결말은 하이타카(게드), 테나, 테루, 아렌이 모두 모여 마치 가족처럼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데(물론 영화는 이후에 아렌의 여정이 다시 시작될 것임을 암시하지만), 이것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생활이야 말로 생(生)에 충실한 삶이라는 영화의 두 번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자아의 상실과 죽음에의 두려움을 물질적 삶으로 애써 감추려 하는 우리들은 결국 더 큰 불안감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평생 동안 자신보다 더 풍요로워 보이는 다른 이의 행복을 좇는 인생은 얼핏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삶 같이 보이지만, 결국 타인의 삶을 사는 것 그 이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고로는 그런 우리들에게 우선 ‘너 자신을 찾고’, 그 후엔 남을 좇는 삶이 아닌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동안의 지브리의 명성을 보자면 『게드전기』는 절반의 성공작, 혹은 절반의 실패작이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게드전기』에는 기존의 지브리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재미있고 신기한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도 시대에 역행하는 듯 매우 정적(靜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을 볼 수 있고, 자연을 묘사한 아름다운 지브리의 그림도 감상 할 수 있으며, 그런 배경에 녹아드는 감미롭고 멋진 음악까지 들을 수 있다. 『게드전기』가 지브리의 역사에 있어서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는 힘들겠지만, 후에 이 영화가 지브리의 미래를 위한 성공적인 세대교체의 첫 번째 발자취로 기억되리라는 나의 생각이 착각만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 이 영화에는 함부로 실패작으로 부르기엔 아까운 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이미지출처 bestan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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