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밥은 먹고 다니냐? - Zodiac / 조디악 (2007)

1969년 7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발레이오(Vallejo)의 블루 락 스프링스 골프코스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이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는다. 이 사건으로 여자는 죽고 남자는 살아남는다. 같은 해 8월 1일,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범인으로 보이는 자의 편지가 도착한다. 편집장에게 직접 전달할 것을 요구한 편지의 작성자는 앞선 사건의 범인이 바로 자신이며, 자신이 누군지는 함께 동봉한 암호문에 나와 있다는 내용을 편지에 담았다. 의문의 편지에는 사건에 대해 범인과 경찰만이 알 수 있는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범인이 보내온 암호문에 관심을 갖게 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삽화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Robert Graysmith: Jake Gyllenhaal)는 어느 교사 부부가 풀어낸 암호문 안에서 ‘the most dangerous game'이라는 문구에 착안, 이것이 ’인간사냥‘을 다룬 동명영화로부터 발췌한 것임을 알아낸다. 한편 범인은 자신을 ’조디악‘이라 명명하고, 69년 9월 27일,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모든 영화를 그만의 해석법에 따라 단순화시키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심형래 감독이 이 영화를 봤더라면 아마 “두 시간 반 동안 범인만 따라다니다가 결국엔 못 잡고 끝나는 얘기잖아, 뭐 별거 없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소 실망스러웠던 『패닉 룸(Panic Room)』(2002) 이후 5년만에 돌아온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는 『세븐(Seven)』(1995)을 낳은 영감(靈感)의 진원지격인 ‘조디악 사건'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그는 명실 공히 그의 마스터피스라고 할 수 있는 『세븐』과 『파이트 클럽(Fight Club)』(1999), 이 두 편으로 좋게 말해 스타일리쉬한, 쉬운 말로 폼(?) 잡는 영화의 대가가 되었다. 그러나『조디악(Zodiac)』(2007)에서 핀처는 허리춤에 얹혀 있던 두 손을 내리고, 넘치는 스타일을 꾹꾹 참아가면서, 마치 실제 사건을 파헤치는 수사관 같은 냉정한 입장을 취한다. 앞의 두 영화가 당신을 『조디악』으로 이끈 계기가 되었다면, 영화를 보면서 약간의 배신감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영화들이 넘치는 지금, 그 영화들이 점점 집착하는 것은 폭력의 수위다. 많은 영화들이 상상만으로도 관객을 공포에 떨게 만들 줄 알았던 과거의 영화적 재치(?)들을 모두 버려버린 채,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실제 같은 유혈장면, 더 실감나는 신체훼손장면을 만들 수 있을지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자극에 대한 면역에 더 큰 자극의 충격으로 그 한계점을 깨 버리겠다는 의도다. 『조디악』은 그런 발칙한 욕심조차 부리지 않는다. 영화의 그 어떤 범행 묘사도 그의 전작들보다 과격하지 않다. 그러나 철저한 사전조사로 보다 실제사건에 가깝게 다가가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조디악』을 과격한 묘사 없이도 더 무서운 스릴러 같은 영화로 만들어냈다. 사건의 나열과 그 뒤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부인 이 영화에서 관객을 질리게 만드는 것은,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는 실제사건의 의외성과 얼굴을 알 수 없는(결국 잡히지 않은) 범인이 주는 공포감이다.

장르화된 스릴러 영화들은 대부분 사연을 가진 범인들을 등장시킨다. 거기엔 인과관계를 가진 사건들이 있으며, 희생자들과 범인이 연관된 경우가 많고, 오히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한 살인은 드물다. 그러나 ‘조디악 사건’은 다르다. 범인이 선택한 희생자들은 대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물론 관련된 경우도 있다), 얼핏 무책임한 영화적 설정 같은 그 것이 바로 사건의 현실성이 주는 공포다. 또한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목격한 아이들에 의해 그저 “평범(normal)하다”고 묘사된 범인의 ‘익명성’은 또 다른 긴장감을 구축한다. 어제 내가 본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시종일관 어둡게 처리되어 결코 보이지 않는 범인의 얼굴은 끝내 미해결로 남게 되는데(용의자만 남긴), 그것이 더 큰 공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 부분에선 비슷한 소재를 다룬,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2003)이 우리에게 주는 효과가 더 클 것이다. 미국의 과거에 있었던, 게다가 유일한 용의자가 사망해버린 ‘조디악 사건’보다는 아직 범인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큰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더 가까운 현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찾아낸 범인의 눈을 응시하고, 단지 그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던 그레이스미스의 심정은 관객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현실의 살인사건은 선정성과 윤리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며 우리를 유혹한다. 끔찍한 범행은 그대로 보기 싫은 것이 되면서도 더 알고픈 이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에선 진실을 쫓는 듯 행동하는 그레이스미스의 진짜 목적은 아마 그 유혹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이었을 게다. 그를 사건의 소용돌이로 이끈 것은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도 아니고, 개인의 행복을 위함은 더더욱 아니었으며(책의 집필로 생긴 아내와의 불화를 보라), ‘조디악’으로 괴롭힘 당한 경찰들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존재를 그저 내 눈앞에서 확인하고 싶은 대중의 선정성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조디악』은 마치 우리의 그런 심리를 시험하고 있는 데이빗 핀처의 미끼같다. 그래서 그것은 불편하면서도 왠지 끌린다.

『조디악』에게 원작이 없었다면 아마 이 영화가 『살인의 추억』의 영향력 안에 있는 작품이 아닐까하는 의혹이 제기되었을지도 모른다. 연쇄살인, 잡히지 않은 범인, 사건으로 피폐해져가는 주변인들, 또 몇몇 장면과 대사들은 그런 의혹을 충분히 받쳐줄만 하다. 『살인의 추억』에서 제대로 통제되지 않아 ‘엉망’이 된 사건현장을 볼 수 있다면, 『조디악』에선 중요한 단서조차 서로 지키기 바빠 사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경찰들을 볼 수 있다. 두 영화 모두에 범인의 ‘평범한’ 인상착의를 이야기하는 어린이가 등장하는 점, 또 서로 말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밥은 먹고 다니는지” 묻는 장면 등은 관객에게 두 영화를 비교하는 또 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데이빗 핀처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배신감을 감수하고라도 극장으로 나설 것을 권한다. 화제작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전하는 영화를 위함이라는 명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바뀐 데이빗 핀처의 모습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폼 잡지 않는 영화도 잘 만들어낸 그가 왠지 반갑다.


* 이미지출처 www.imdb.com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