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주객전도 (主客顚倒) - Fantastic 4: Rise Of The Silver Surfer / 판타스틱 4: 실버 서퍼의 위협 (2007)

전편인 『판타스틱 4』(2005)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이제 잘 만든 특수효과 하나로도 영화 제작자들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적어도 거대한 제작비를 들인 영화들에 한해서,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나 촘촘히 짜인 플롯의 흡입력 같은 전통적인 영화의 매력들은 서서히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판타스틱 4』의 미국 내에서의  성공은 아마도 원작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추리해 낼 수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3억 달러가 넘는 높은 흥행성적은 원작만화의 매력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다. 헐리웃의 자랑인 특수효과와 세계적인 미녀 아이콘 제시카 알바가 유일한 장점이었음에도 『판타스틱 4』는 일정이상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전작의 성공을 발판으로 네 명의 ‘판타스틱’한 영웅들은 더 놀라운 특수효과와 새로운 캐릭터를 대동한 채 『판타스틱 4: 실버 서퍼의 위협』(이하 『실버 서퍼의 위협』)으로 다시 돌아왔다.


『판타스틱 4』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여타 수퍼히어로물과 달리 가벼운 분위기가 영화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점은 영웅들이 묘사되는 방법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판타스틱 4” 멤버들은 소수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고, 돈도 되지 않는 영웅질로 생계의 곤란을 겪지도 않으며,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에 갖혀 지내지도 않는다. 게다가 리더인 리드 리차즈(Reed Richards: Ioan Gruffudd)는 아예 슬랩스틱 코미디의 설정에 어울릴만한 특수능력, 즉 몸을 고무처럼 늘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수 스톰(Sue Storm: Jessica Alba)은 1편에 이어 2편에서도 눈부신 몸매를 드러내면서 특수능력과 웃음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불을 다룰 줄 아는 자니 스톰(Johnny Storm: Chris Evans)은 자신을 향한 대중의 환호성을 연애사업으로 확장시킬 줄 아는, 전형적인 바람둥이 캐릭터에 머무른다.


그나마 (자신의 겉모습으로 인해)가끔 고민하는 캐릭터는 더 띵(The Thing/Ben Grimm: Michael Chiklis) 뿐인데, 멤버 중 유일하게 특수능력 상태로 머물 수밖에 없는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보다 오히려 그 바위 같은 몸으로 웃음을 유발하는데 주력한다. 주인공들의 캐릭터 자체가 가볍게 설정되었기에, 영웅의 활약상보다 그들의 어두운 면, 혹은 현실적인 부분에 더 공감을 느끼는 관객들은 『판타스틱 4』의 영웅들이 이 전혀 ‘판타스틱’하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실버 서퍼의 위협』은 그런 전편의 분위기를 그대로 끌어오는 동시에,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또 하나의 수퍼히어로 “실버 서퍼”를 새롭게 등장시킨다.

Joe Satriani - Surfing With An Alien (1987)

 

 

스탠 리(Stan Lee)와 잭 커비(Jack Kirby)에 의해 원작코믹스 『판타스틱 4』에 처음 등장한 “실버 서퍼”는 그만의 팬덤을 형성하면서 별도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재탄생된 캐릭터다. 만약 기타 연주 앨범에 관심 있는 음악팬이라면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의 87년 앨범 『Surfing With An Alien』의 자켓을 기억할 것이다. 은색(앨범엔 흰색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지만) 서핑보드를 타고 폭발하는 화염을 탈출하는 모습의 그 ‘Alien’이 바로 “실버 서퍼”다. 유명 기타리스트가 공공연히 팬임을 자처할 정도로 미국 내에서의 “실버 서퍼”의 위상은 꽤 높다고 한다. 잠재력을 알 수 없는 엄청난 능력으로 지구를 위기에 빠뜨리는 “실버 서퍼”의 등장은 영화 『실버 서퍼의 위협』에서 분명 큰 장점으로 작용했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의 만남은 그리 보기 좋게 성사되진 않은 것 같다. 과도하게 진지하고 과묵한 “실버 서퍼”의 캐릭터 자체가, 시종일관 영화에 가벼운 분위기를 불어넣고 있는 “판타스틱 4” 멤버들과 마치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영화는 새로운 영웅의 비중을 높이고 싶은 나머지 지구의 운명을 아예 그에게 맡겨버리는 우까지 범한다. 결국 분위기를 한껏 띄워놓은 4명의 영웅들이 “실버 서퍼”의 카리스마에 가려 마치 조연처럼 느껴지게 되는데, 여기에 약간의 추측을 더해보자면 영화 『실버 서퍼의 위협』이 “실버 서퍼”를 주축으로 한 다른 시리즈의 예고편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심각하게 폼 잡는 영웅들만 환호 받는 것은 어쩌면 불공평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영웅들의 특수한 능력만으로 그저 우리를 웃겨주는 영화가 반가울 때도 있다. 『판타스틱 4』의 강점은 그야말로 알록달록한 컬러 만화책 같은 영화의 밝은 성격이었다. 서로의 특수능력이 뒤바뀌어 벌어지는 해프닝은 『실버 서퍼의 위협』에서 그런 고유의 분위기를 가장 잘 살린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실버 서퍼”의 등장은 그의 팬들에겐 반가운 것이었을지도 모르나 영화의 일관성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운 선택이 되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웅의 활약상이나, 특수능력만큼이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제시카 알바의 몸매, 그리고 가끔씩 터져주는 유머에 그저 만족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올 여름 『실버 서퍼의 위협』이 좋은 선택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시각효과를 제외하고 전편보다 나은 영화를 기다렸다면 『실버 서퍼의 위협』은 금세 뇌리에서 잊힐 만한 작품이다. 오죽하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수 스톰과 리드 리차즈의 결혼식에서 입장이 거부되는 스탠 리의 카메오 출연이랴.

* 이미지출처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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