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리뷰] Que Sera, Sera - となりの山田くん / 이웃집 야마다군 (1999)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녁반찬을 걱정하던 엄마는 마침내 굳은 결심을 한 듯 팔을 걷어붙인다. 지난주와 그저께 모두 카레를 먹었는데, 오늘은 무얼 만드실까?

“오늘이야말로... 카레로 한다!!”

입맛까지 다시면서 색다른 메뉴를 기다린 딸 노노코의 기대는 여지없이 사라진다.

아들 노보루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모처럼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고 싶었던 아빠는,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금세 긴장하여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내고 만다. 온가족이 함께 간 쇼핑몰에 노노코를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모두들 걱정하고 있을 때, 노노코는 정작 자신이 아닌 가족들이 미아가 되었다면서 태연자약하다.


음, 뭔가 느낌이 오질 않는다고? 그건 아마 나의 표현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일 게다. 아니면 『이웃집 야마다군』이 어떠한 언어로도 쉽게 설명되지 못할 대단한 작품이든지, 둘 중 하나다. 나는 잠시 양심에서 손을 ‘내리고’ 후자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정답은 ‘둘 다 맞음’이다. 내 표현력이 터무니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걸작임이 분명한 『이웃집 야마다군』은 직접 봐야 제 맛을 안다.



『이웃집 야마다군』은 원작의 4컷짜리 만화를 그대로 옮겨온 듯, 기승전결이 없는 짧은 에피소드의 연속이다. 그러나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 부부간의 정, 가장의 비애, 첫사랑의 설렘, 나이 든다는 것, 그리고 결국에 가족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나마,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 가슴깊이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족의 초상이기도 한 동시에, 이웃집 순이네, 철이네의 모습이다. 야마다네 가족은 어쩌면 이름은 다를지언정 우리 집 뒤편 세 블록 쯤 떨어진 어느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그 가족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야마다네 가족의 짧은 에피소드들은 관객의 박장대소를 이끌어내진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은근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공원청소를 두고 의견 차이를 가진 할아버지와 ‘너는 저쪽, 나는 이쪽’ 하며 어린아이처럼 금을 긋는 할머니의 모습, 집에 돌아온 노보루가 우동과 끓인 물을 발견하고 이내 우동 한 그릇을 내놓으면, 빈 그릇을 가지고 슬며시 다가오는 엄마, 한손에 신문을 든 채, TV 채널권을 놓고 리모콘을 가진 엄마와 권법신공(?)을 펼치는 아빠,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전화를 받고 기분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노보루, 자신을 마트에 두고 떠난 가족들이 오히려 미아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노노코, 야마다네 가족은 간결한 그림체만큼이나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때가 덕지덕지 낀 나의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웃집 야마다군』은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함께,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 느껴봤거나 혹은 앞으로 경험해볼, 인생의 애처로움까지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할머니가 병으로 입원한 친구를 문병 갔을 때,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오히려 슬픈 내색을 하지 않는 친구의 모습이라던가, 폭주족들을 당당하게 상대하는 장모님과 달리 용기를 내지 못한 아버지가 자괴감에 빠져 쓸쓸히 동네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는 장면 등은, 눈물로 범벅이 되기를 강요하는 그 어떤 신파보다 건조하지만 오히려 더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웃집 야마다군』에 대해 더 이상 글을 쓴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 역시 이미 ‘의미없는’ 자음과 모음을 수없이 뱉어내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울 뿐이다. ‘디지털=인간미 없음’이라는 공식이 어느새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지금, 1999년에 100% 디지털 방식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한편이 놀라우리만치 우리의 감성을 일깨워준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당혹스럽다. 형식이라는 것은 결국 내용을 담는 그릇 이상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형식에 내용이 함몰되거나, 지나치게 외관에만 집착하여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그런 영화들을 봐오다 『이웃집 야마다군』 같은 작품을 발견했을 때,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보석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음, 지나친 비약이라 해도 좋다. 『이웃집 야마다군』이 내 생애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 이미지출처 bestan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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