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훔쳐보기의 미덕? - Disturbia / 디스터비아 (2007)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엑스박스, PSP, 휴대폰, 아이팟과 아이튠즈, 유튜브 등 지금 십대의 문화적 기호들이 총출동하는 『디스터비아』는 젠체하지 않는 담백한 스릴러다. 아니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어둡고 음침한 느낌의 장르명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유쾌하고 재미있다. 『디스터비아』는 아마도 올해가 지나면 기억나지 않아도 좋을 가벼운 영화지만, 관객의 두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상해줄 만큼의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다.


이 영화가 재밌는 이유는 그것의 치밀한 이야기구성에 있지 않다. 『디스터비아』는 일부 영화팬들이 목매는 휘황찬란한 CG를 보여주지도 않고 탄탄하다고 부를만한 플롯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관객이 범인이 누구인지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는 이 영화의 재미는 오히려 소소한 반전과 속이 훤히 드러나 보여 귀엽기까지 한 복선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테면 가택구금(拘禁)의 지루함에 못 견딘 케일(샤이아 라보프)이 트윙키를 ‘파이모양’으로 쌓고 있는 장면 다음에는 관객이 상상할 만한 어떤 상황(더구나 십대영화의 탈을 쓴 이 영화라면 더욱)이 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예상을 했든 안 했든 피식하는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며 작은 반전을 이룬다. 또한 케일이 시청하는 리얼리티 쇼 ‘치터스’, 새로 이사 온 애슐리(사라 로머)의 눈부신 몸매를 보여주는 장소인 수영장, 케일이 보는 TV뉴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살해되는 여자들의 소식, 케일의 발목에 달린 센서의 허용거리범위를 지정해 놓기 위해 설치한 선까지 모두 향후 벌어질 사건과 상황들에 대한 크거나 작은 복선의 역할들을 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것들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작지만 꽤 쏠쏠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선생을 폭행한 죄로 발목에 센서를 부착하고 집에만 묶여있는 신세가 된 주인공 케일은 사실 별도의 구속 없이도 집안에서 즐길 거리를 찾아내는 요즘의 십대를 대변한다. 이들은 진짜 같은 전쟁터를 구현해내는 엑스박스 게임으로 하루를 때울 수도 있고, 굳이 CD를 사러 나갈 필요 없이 집안에서 mp3 파일을 다운받아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그것마저 질린다면 조금은 구식이지만 수백 개의 채널이 온갖 자극적인 화면을 내뿜고 있는 케이블TV로 심심함을 달랠 수도 있다. 케일이 구금초반의 지루함에서 벗어나려 하는 행동들은 거의 다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케일의 엄마인 줄리(캐리 앤 모스)는 아들에게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런 즐거운 놀이(?)들을 하나둘씩 차단한다. 자, 상황이 이렇게 되자 케일은 이제 마지막 남은, 그러나 동시에 가장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웃을 훔쳐보기. 케일은 그가 보던 ‘치터스’처럼 이웃을 중계하는 리얼리티 쇼를 시작한다.

         



관음증을 다룬 여타의 영화들이 그 행위의 음험한 속성에 중점을 두지만, 『디스터비아』는 그런 논의에서 한참 비껴나 있다. 사실 영화를 보는 즐거움 자체도 허구이긴 하나 타인의 삶을 지켜보는 관음증의 쾌감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디스터비아』에서의 훔쳐보기에 대한 시선은 대개는 그런 식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얻게 되는 쾌감의 긍정적인 면처럼, 영화에서 케일이 이룬 성취는 모두 이웃을 훔쳐본 행위에서 온 긍정적인 결과들이다.

『디스터비아』에서 케일이 지켜보는 이웃들을 살펴보면 크게 연쇄 살인범인 터너(데이빗 모스)의 집, 갓 이사 온 애슐리의 집, 그리고 항상 케일을 골탕 먹이는 꼬맹이 삼형제의 집이다. 자신이 당한 만큼 앙갚음을 해주겠다고 벼르는 케일이 꼬마들의 방을 훔쳐보며 얻게 되는 것은 복수(?)를 위한 중요한 도구. 엄마 몰래 포르노를 보고 있지만 절대 들키지 않는 영리한 꼬마들에게 케일의 전화 한 통화가 훌륭한 복수가 된다. 이제는 애슐리의 집. 어딘가 소외되어 보이는 애슐리와 친해진 계기도 망원경, 그녀의 마음을 빼앗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몰래 보는 행위가 가져다 준 케일의 세심한 관찰력이다. 주인공의 훔쳐보기가 여자친구의 획득(?)으로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관음증의 어두운 면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는가? 마지막으로 살인 용의자를 꾸준히 지켜보며 증거를 수집하고, 급기야 범인을 손수 처단한 케일은 그 선행으로 자신의 죄값도 청산한다.

케일의 은밀한 취미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결과들을 볼 때, 『디스터비아』의 관음증에 대한 가능하고도 유일한 분석은, 이 영화가 지금의 대중문화를 어떻게든 긍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일 게다. 현재의 미디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리얼리티 쇼(그것이 설령 연출에 의한 것일 지라 해도 적어도 보이는 형태만큼은 실제 같은)에 목매어 있고, 심지어 정보의 전달이 목적인 뉴스마저도 전쟁의 실시간 중계로 그 일련의 대형에 속해 있으니까.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는 논의가 무색하게 『디스터비아』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얘기의 요지는 아주 단순해 보인다. 그것은 『디스터비아』의 케일이 영화에서 남을 훔쳐보며 얻는 행복한 결과들처럼 당신도 어두운 극장에 앉아 케일의 행동을 훔쳐보면서 즐거움을 얻으라는 것. 시커먼 극장과 대비되어 한밤중 캄캄한 창문을 3분의 1쯤 열어둔 듯 밝은 스크린 속의 케일을 훔쳐보다보면, 마치 옆집의 상황을 몰래 살펴보는 것 같은 짜릿한 기분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 이미지출처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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