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은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뜻하지 않은 아기의 모습과 아내의 위독함에 충격을 받은 벤자민의 아버지는 크기만은 아직 아기인 그를 어느 양로원 계단에 버려둔 채 발길을 돌린다. 그런 그를 양로원에서 일하는 퀴니(태라지 P. 헨슨)가 발견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모여있는 이곳.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가까워 보인 벤자민에게 어쩐지 어울리는 장소 같다. 퀴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나이 들어 아이처럼 된 노인들의 관심 속에 벤자민은 거꾸로 성장한다. 성장과 함께 젊음의 꼭지점을 돌아 육체의 내리막길을 걷는 우리와 달리 그는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것. 날마다 생명의 샘을 마시는 벤자민은 아직 노인의 모습일 때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 소녀,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와의 만남은 둘..
영화는 종종 기분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좋은 추억은 영원히 마음 속에 남아 있을 때 더 빛을 발한다. 그것이 비록 미화되거나 과장되어 있더라도 말이다. 중절모와 채찍으로 각인되어 있는 존스 박사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슈퍼맨, 루크 스카이워커와 함께 언제나 내 마음 속 영웅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그다. 얼뜬 표정과 실없는 농을 흘리면서도 결국 위기를 극복해내고야 하는 그 능력은 결코 보통사람의 것이라고 볼 수 없지만, 존 윌리엄스의 엉덩이를 근질거리게 만드는 메인테마와 함께 이 노련한 고고학자가 등장하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정신 없는 모험 속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돌아왔다. 그것도 자신을 탄생시킨 바로 그 사람들과 함께.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굳이 새로이..
이냐리투의 영화를 보는 것은 누군가의 황폐해진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런 경험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지난 아픔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거나 혹은 영화에서 실시간으로 그런 역경과 마주치게 된다. 영화 에서 지구상의 다른 공간에서 동시간에 발생하는 사건들은 서로 희미한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각기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현미경을 이용해야만 하는 의 에피소드들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출발점의 작은 행위가 거대한 폭풍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닮아있다. 모로코와 일본,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이라는 영화 속 장소들은 각 공간간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단절되어 있지만, 인간사를 고난의 연속이라 부를만한 몇 가지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영화를 통해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