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포함 이런 말을 계속 해서 안타깝긴 한데 어쩌랴, 각색된 영화의 모든 원작을 일일이 찾아볼 수는 없잖은가. 이럴 때 터무니없이 부족한 독서량을 탓해봤자 소용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래야만 마음이 좀 놓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는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 를 봤고, 그래서 원작소설이 이 영화에 가지는 비교우위(당연히)를 측정할 입장이 못 된다는 말이다. 영화를 원작과 분리한 채 영화 자체만으로 보겠다는 구차한 변명. 어느 날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이 멀어간다. 처음 이 증상을 가진 일본인 환자를 진찰했던 안과의사(마크 러팔로)도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알 수 없는 증세가 옮겨갈 것이 걱정되어 아내(줄리안 무어)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하지만 그녀의 눈은 멀..
안톤 후쿠아의 작품들은 액션영화의 마초중심적인 외피 속에 풍부한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스타일에 집착한 시각적 이미지로 승부하는 영화들이다. 아마도 지금 대부분의 액션영화들이 궁리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현란하고 더 강렬한 이미지들을 더 많이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물음일 텐데, 안톤 후쿠아도 홍콩 느와르의 형식을 헐리우드 속에 녹여내려 했던 데뷔작 『리플레이스먼트 킬러』(1998)에서부터 줄곧 스타일리쉬한 액션씬을 짜내는데 골몰한 흔적이 보이는 감독이다. 뮤직비디오 출신의 감독들이 대개는 그렇듯 그도 영화의 이미지에 집착한다. 안톤 후쿠아의 최고작 『트레이닝 데이』(2001)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다른 영화였다. 이 영화는 액션장면 자체가 주인공이 되지 않고 두 인물(덴젤 워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