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ot 'Em Up /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 (2007)

한밤중 벤치에 앉아 시력에 좋다는 당근을 씹어 먹던 스미스(클라이브 오웬)는 뜬금없이 나타난 임산부와 그를 위협하는 괴한 사이에 휘말려든다. 근데 이게 좀 간단치가 않다. 한 놈을 없애니 어디서 왔는지 나머지 녀석들이 우르르 하고 몰려든다. 거기에 그들의 보스로 보이는 남자 허츠(폴 지아매티)도 가세한다. 여자와 아이를 구하며 불의를 지키려던 스미스는 난데없이 알 수 없는 조직의 표적으로 낙인찍히고, 결국 죽은 산모를 대신해서 아이를 지켜야만 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수틀리면 모두 날려버리는 불같은 성격 뿐.


엉성한 얼개로 어색하게 폼 잡느니 차라리 코미디가 낫다. 누군가가 <거침없이 쏴라! 슛뎀업>(이하 <슛뎀업>)을 진지한 액션영화로 기대하고 본다 해도 말릴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그가 이 영화를 코미디로 생각하고 본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얘기는 해주고 싶다. 마치 FPS 게임의 영화 버전 같은 이 영화는 비현실적인 액션이 주를 이루는데, 그렇다고 프레임 하나하나에 폭력의 미학을 아름답게 수놓았다기보다는 그저 쏘고 달리고 죽이고 터뜨리는 액션 자체에 집착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말 그대로 ‘모조리 쏴버리는’ 쾌감을 노린 것이랄까. 평소 액션씬이 조금이라도 길어질라치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나였으나 어째 <슛뎀업>은 좀 달랐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액션 그 자체로 코미디거든.

 


우리는 종종 어떤 것이 현실과 너무나 떨어져 있는데 마치 그것이 현실인 냥 짐짓 가장하고 있을 때 왠지 모를 웃음을 느낀다. 예를 들어 최근 모 대선후보가 TV토론에서 보여준 엉뚱한 말장난의 향연(마치 토론 장소와 술집에서의 비공식 모임을 혼동한 듯한)은 일부 정치에 진지한 사람들에게는 ‘충격과 공포’였겠으나 나 같은 이에겐 그야말로 ‘코미디’였을 뿐이다. 기대되는 것이 여지없이 붕괴되고 그 자리에 엉뚱한 무엇이 자리 잡았을 때 그것은 오히려 우스운 상황이 된다. <슛뎀업>은 기존 액션영화의 비현실성을 현실인 척 진지하게 가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이것이 아예 맘먹은 거짓말임을 폭로해버린다. 따라서 <슛뎀업>을 그저 진지한 액션영화로 기대한 사람들에겐 영화의 이런 태도가 ‘충격과 공포’로 다가가겠지만, 아예 처음 총격장면에서부터 허리띠를 풀고 편안히 지켜보고 있자면 이건 더할 수 없이 웃긴 ‘코미디’가 된다.


예컨대 스미스가 그를 쫓는 차량의 앞쪽 유리창을 그대로 뚫고 들어가 뒤쪽 공간을 차지한 다음 느긋하게 일당을 소탕하는 장면이나, 건물에서 떨어지면서 미리 차량 위쪽을 총으로 깨버린 후 그대로 좌석에 자리 잡는 장면, 또는 악당 허츠와 1대 1로 맞붙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그야말로 맨손으로 총알을 뿜는 장면 등은 <슛뎀업>이 만화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터무니없는 액션의 세계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 영화를 진지한 캐릭터들의 그럴싸한 액션물로 인지하는 것은 애초에 그 관객이 이런 영화에 익숙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잘 생각해보자. 무심코 쏘는 총알이 저절로 날아가서 적들을 맞히듯 휘황찬란한 사격솜씨를 자랑하고 부잣집 도련님이 신호 없이 차선을 변경한다고 그 차를 그대로 박살내는, 100% 테스토스테론의 마초인 이 주인공이 가장 즐겨찾는 음식은 어이없게도 ‘당근’이다. 이 자체로 우습지 않은가? 게다가 스미스가 가끔씩 던져주는 대사들(대부분 언어유희와 결합한)은 진지한 그의 표정 때문에 더욱 웃기다. 이를테면 스미스가 “젠장”이라는 의미로 “Shit"이라고 내뱉을 때 정말 신문에 아기똥이 묻어 있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클라이브 오웬의 얼굴은 당근을 씹을 때마다 남성을 상징하는 턱 근육을 강조한다. 씰룩거리는 턱 근육의 모양새는 건드리면 꿈틀대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잘못되었을 때엔 여지없이 폭발해 버리는 그런 위험천만한 어떤 것. 이 영화가 미국 내의 ‘총기규제’에 관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한다고 그다지 서운해 할 것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총과 총알로 장식된 한편의 희극이 주는 의외의 즐거움이지,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이 영화로부터 얻을지도 모를 ‘슛뎀업’ 정신이 아니니까. 하긴 우리도 가끔 영화 속 스미스처럼 개념 없는 신호위반자들을 욱하며 처단하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만.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