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김용규)

 

문학 그 자체가 아니라 문학작품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은 언뜻 유쾌하지 않은 일 같기도 하다. 그것은 그 대상으로부터 독자가 받을 수많은 감상 중 몇 가지를 미리 정해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한 감상은 온전히 수용하는 자의 몫이 된다. 문학작품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감상의 수, 즉 그 ‘경우의 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수 만큼이다. 우리 개개인은 얼마나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지니고 있는가. 작품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결국 개개인의 고유한 감정과 경험에 바탕을 둔다. 고로 작품의 해설서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수많은 가능성을 미리 가지치기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떨지. 앞의 문제가 결국 ‘미리 말해진 것의 권위’를 앞서 인정하기에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렇지 않고 단지 그런 작업을 그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행위라고 놓고 볼 때, 우린 좀 더 풍부한 경험을 그야말로 손쉽게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중 하나로 본다면, 또 그 해석이 굉장히 풍부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면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아니다. 철학이란 결국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던가.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는 것은 문학의 감동과는 또 다른 종류의 쾌감이다. 더구나 그런 과정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독자들은 이렇게 남의 과정을 슬쩍 엿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8점
김용규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책의 서두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는 특정 문학작품을 꼬집고 비트는 ‘비평’을 담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작품의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비평은 때론 해당 작품은 온데간데없이 비평가의 쓴 비웃음만 남길 때가 있다. 하지만 해석은 작품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는 책에서 다룬 작품들에 대한 기존의 여러 해석들을 모아서 저자(김용규)가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거나 혹은 여러 상충되는 의견들을 규합해 풍부한 ‘해석’을 담아냈다. 즉 이 책이 다루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부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을 독자가 이미 접한 상태라면, 자신의 생각과 비슷할지도 모를, 또는 그보다 더 멀리, 더 깊이 뻗어있는 철학적 해석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다. 아니 설령 이 작품들을 전부 읽지 않았더라도 이 책은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나의 경우를 본다면.


이 책은 사실 어디서부터 읽기 시작해도 좋을 책이다. 아마도 이 책에 독자가 이미 접한 작품들이 있다면 그 부분을 우선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얼핏 따로 떨어져 있는 듯한 각 챕터들은 몇 개씩 짝을 이루며 일정한 주제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사르트르의 <구토>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그리고 카뮈의 <페스트>를 다루는 세 챕터는 모두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또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관한 작품들의 연결도 흥미로운데, 책의 뒷부분, 즉 최인훈의 <광장>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그리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웰의 <1984>를 다룬 네 챕터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그 작품들을 이미 읽어봤더라도 이렇게 일직선에 놓고 서로를 비교하는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도 의미 있는 셈이다. 특히 후반의 네 작품(의 해석)은 인간이 꿈꾸고 있는 이상적인 세계상을 고민하고 있어 지금처럼 ‘철학의 부재’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꽤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이미 20세기에 이상적인 사회를 가장했던 양 극단의 전체주의를 경험한 이 세계(혹은 아직도 경험하고 있는 국가들을 포함하여)에는 벌써부터 그것에 대한 경고를 담은 작품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문학의 사회성이란 때론 얼마나 긴밀한가.

솔직히 우리는 문학작품을 홀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사실 나부터 그랬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모두 성공학이나 처세술을 다룬 책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금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삶의 여유를 과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오해될 때가 많다. 그러나 진지하게 인간을 성찰하고 사회를 고민하는 자세는 결코 그런 개인의 안위를 다룬 책들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작품의 해석에 대한 단순한 지식만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문학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저 지침을 받아들이면서 실행의 옮김에 족하는 그런 책들이 아니라, 충분히 고민하고 그 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김해야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읽기’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나와 타자, 그리고 그들로 이루어진 이 사회를 바라보는 올바른 ‘철학’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철학의 부재’가 인간사회를 동물과 같은 약육강식(단지 은유가 아니라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의 세계로 바꿀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경고를 느끼고 있다면. 또 적어도 우리가 그런 ‘동물의 세계’에 살고 있지는 않다고 믿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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