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조신영, 박현찬)

평소 말이 별로 없는 나에게 대화란 하나의 일과 같다. 누군가를 마주 본 채 그 사람의 생각과 나의 의견을 교환하는 이 행위는 적잖은 주의력을 필요로 한다. 아마도 원체 부족한 말솜씨에다가 말실수에 대한 지나친 조심이 이 정력소모의 주요인일 것이다. 대화는 결국 사람간의 소통이다. 나처럼 힘 들이며 말을 나누든, 쉽게 단어들을 쏟아내든 간에 어쨌든 이 행위가 이뤄지는 순간만은 혼자이기 위한 시간이 아닌 것이다. 대화중인 당사자들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데 힘쓰느냐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데에 더 집중하느냐는 양 갈래의 길에 놓인다. <경청>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우선 들으라고 조언한다.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다. 각자의 주장만을 쏟아놓고 서로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소통이라 부를 수 없다. 결국 대화 혹은 사람간의 관계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행위는 자연스레 듣는 것이 된다.



<경청>에는 한 현악기 제조회사의 과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원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만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본명이 아닌 이토벤으로 불리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인데, 이것은 그를 위대한 음악가인 베토벤에 빗댄 것이 아니라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베토벤에 비유한 별명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의 경영전략 변경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이토벤은 자진퇴사해 악기 대리점을 준비한다. 바쁜 와중에 그를 심란하게 만드는 사건이 하나 더 일어나는데, 그것은 주인공의 병. 시한부인생을 선고 받은 이토벤은 소중히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한다. 그 동안 부하직원들에겐 물론 아내와 하나뿐인 아들에게 마저 독선적인 모습만을 보여줬던 그는 지나온 인생을 덧없이 후회한다. 병으로 인해 나날이 청력마저 일어가는 이토벤은 그러나 삶의 태도를 바꾸면서 인생의 진짜 의미를 조금씩 알아간다. 그것은 닫힌 마음을 열고 다른 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것. 그의 이러한 태도는 주위의 분위기도 점차 바꿔나가기 시작한다.

 


이토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종종 마음을 벽을 쌓아두곤 한다. 그 벽에는 생활수준의 차이, 학력의 차이, 혹은 가치관의 차이 등 타인을 대할 때의 수많은 평가기준들이 적힌 벽돌들이 채워져 있다. 만약 이 벽을 허물어뜨리지 않는다면 참 의미에서의 그 대상과의 소통은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근데 이게 참 어렵다. 인간의 가치관은 성장과정에 의해 확고하게 결정되는데 이건 마치 세 살 버릇과 같아서 여간 고치기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 속 이토벤이 독선적인 태도에서 열린 마음으로 변화할 때 그의 불치병이 결정적인 촉매제 역할을 한 것처럼 어쩌면 현실의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도 어떠한 커다란 계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경청>의 이야기가 단지 현실의 어려움을 무시한 가상의 따뜻한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건 미지의 희망을 담은 하나의 소설이다. 그것도 절망 위에서 피어나 더욱 드라마틱하지만, 같은 이유로 식상함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이 책이 독자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있어 가장 소극적이고도 가능성 있는 방식은, 책이 우리를 ‘경청’의 출발점으로 데려다 놓는 것이다. 이토벤의 삶의 변화로부터 독자는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볼 계기를 얻는다. 나는 과연 주변인들과의 소통에 성공하고 있는지, 혹 내 방식대로만 행동하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아닌지 하는 질문들. 단순하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그것. 그러나 이미 이런 질문의 시작이 바로 삶의 변화의 초석이 된다. 우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 자체로 우리는 ‘경청’의 첫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의 마음을 들으려고 조금씩 노력하면 된다. 우리는 <경청> 속 이토벤보다 남은 시간이 많다. 굳이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매일 한 발씩 내딛는 심정으로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 ‘경청’의 과정은 조금씩 완성될 것이다. 그것이 과연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 작용할지는 자신 있게 확신할 순 없지만, 이로 인해 적어도 서로의 벽안에 갇힌 채 메아리처럼 울리는 혼잣말은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다. 바로 소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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