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공교롭게도 이 책을 다 읽고 난 직후 미국의 금융위기 뉴스가 들려왔다. 이거 참 묘한 타이밍이다. 전세계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 거대한 나라의 휘청거림은 결코 그 국내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가 흔들거리고 있다. 혹자는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실패한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경제란 워낙 여러 가지 변수가 맞물려있는 분야여서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조건 없는 자유무역과 규제완화를 부르짖던 미국이 공적인 손이 필요한 구제금융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다. 과연 그들이 부르짖던 무한경쟁과 무한자유의 세계는 유토피아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이었을까. 여기에 이 물음에 대한 절대적 답안은 아니지만 무척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반대의견이 있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사실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예견한다기 보다, 이 일방적인 착취에 가까운 경제 구도에서 바람직한 세계경제 구조로의 개편(효율과 정의를 모두 추구하는)을 촉구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으로 삼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개인이 세계를 어떤 눈으로 보는가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옳은 대상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는다고 가정할 때 앞 문장은 더욱 그럴듯하다. 놓여진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 자신의 망막 위에 걸쳐놓으면 그의 세상은 누군가가 먼저 구축해놓은 하나의 특정한 세계관에 편입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조그만 행성에는 자신들이 보유한 시각의 통로가 절대선인 것처럼 믿거나 설파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불행하게도 현실에서의 세계는 부의 공평한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경제의 주도권을 쥔 강대국들의 논리가 마치 불변의 진리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결국 우리 앞에 놓인 세계관의 선택지는 각기 크기가 달라서 무작정 큰 것을 고르다간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도 없이 기득권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습득하고 만다. 당연히 현실의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그것의 대안을 찾을 가능성은 저만치 사라져버린 채.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전세계가 관세 등의 보호무역의 장벽을 허물길 바라고 개발도상국들의 보호산업육성을 반대하며 세계경제지도를 철저한 자유, 경쟁 구도로 개편하려는 신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논리적인 반론이다. 저자는 이들의 신념 자체가 모순된 것이라 주장한다. 책의 내용은 일단 강대국의 성장배경과 그들의 주장간에 얽힌 모순을 이야기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생김새의 ‘세계화’라는 구호가 실은 굉장히 구차하게도 강대국들만의 입장을 토대로 세워졌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여기에 저자는 세부적으로 개별 국가의 민족성이나 부패 정도가 그 나라의 경제발전에 끼치는 영향을 확대 해석하는 경향, 혹은 공기업의 민영화가 과연 좋은 결과만을 가져올 것인가 같은 문제들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견해를 하나하나 반대의 예를 들어 격파해나간다.

이를테면 미국, 영국을 비롯한 지금의 강대국들이 그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 과정의 기본은 결코 동일한 조건 하의 무한대 경쟁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무역이 세계를 동일하게 발전시키게 될 것이라는 지금의 주장과는 너무도 다르게(혹은 뻔뻔하게도)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규제의 도입과 높은 무역 장벽을 통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의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체계를 도입하라며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구체적인 사례와 논리적인 해석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이나 국가들이 세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립하려는 시도를 명쾌하게 분쇄한다.

이 책이 갖는 의의는 그 내용이 갖는 설득력과는 별개로 어쩌면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될 수도 있다. 비관적이게도 어차피 세계는 다수의 부를 거머쥔 소수 강대국들의 입김에 의해 여전히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에 대한 적극적인 회의나 심각한 불만 없이, 또는 아무런 관심 없이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독자는 적어도 또 하나의 선택지를 얻은 셈이 된다. 이것은 대다수 미디어에서 침 튀기며, 혹은 교묘하게 줄곧 떠들어 대던 그런 시각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마치 어린 시절의 교과서처럼 굳건한 신념으로 대우했던 세계의 경제질서가 실은 몇몇 기득권의 의해 대부분 조작된 것이었음을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말해준다. 우리는 앞에 새로이 놓여진, 세상을 보는 다른 방법이 쓰인 작은 선택지를 한번쯤 들어올릴 필요가 있다. 크게 인쇄된 통에 그 진위조차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이전의 사실이 또 다른 시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세계는 아직 막장으로 가는 열차를 타진 않았나 보다. 또 우리의 시각은 그렇게 넓어진다.





* 마지막으로 국방부의 그 놀라운 식견과 시대를 초월한 문학적 반어법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색출해낼 수 없는 양서만을 골라내는 그 탁월한 시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우리나라 아직 밝다. 이런 거 매년 해주면 무지 고맙겠다. 책 고르는 시간도 줄일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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