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제목만 보고는 사진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설령 글이 있더라도 페이지 안에서 사진의 비율이 훨씬 높은. 생각보다 사진이 그다지 많이 수록되진 않은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농담하는 카메라>)는 수필집이다. 이 책의 제목은 소설가인 저자가 일상의 한 부분을 글로 포착하는 행위를 카메라가 대상을 담아내는 것에 빗댄 것이다. 물론 지은이가 직접 찍은 것, 혹은 그렇지 않은 이미지 등, 사진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농담하는 카메라’란 진짜 농담을 하는 어떤 놀라운 기계가 아니라 저자 자신을 가리킨다.

잠시 다른 얘기지만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뭔가 선수를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블로그를 몇 달간 방치해두었다가 다시 끼적대기 시작할 때쯤 내 머리를 스친 것이 바로 블로깅이 사진 찍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첫머리 ‘작가의 말’에는 ‘이 책에 실린 글들에는 기록할 거리를 만드는 나, 기록하는 존재로서의 나, 기록의 저장매체인 내가 들어 있다’는 문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자신이 카메라와 같은 것이다. 이 표현을 잠시 빌려와도 좋겠다. 이 블로그 또한 그렇다. 다만 소재의 측면에서 책과 영화, 음악 정도로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상에 대한 기억과 인상을 사진을 찍듯 글로 찍어낸다는 점에서 나 자신이 카메라, 끼적댄 글이 인화된 사진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자. 수필은 글쓴이의 성격과 가치관을 살펴볼 수 있기에 흥미롭다. <농담하는 카메라>에 담긴 짧은 글들은 소설가 성석제의 일부분을 알려준다.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에서 태어난 그는 등산을 좋아하고 한때 관련된 직업을 꿈꿨을 만큼 바둑에 취미가 있으며 요란한 글씨체의 광고문구로 장식된 식당보다 조용히 제 맛을 지키는 맛집을 선호한다. 또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만큼 주변에 널려있는 문자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틀린 곳을 교정하거나 때론 그것을 엉뚱한 상상으로 잇기도 한다. 이건 작가로서의 일종의 직업병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구분의 기준이 뚜렷한 것은 아니다. 모두 일상의 단편을 기록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독자가 어느 부분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나로서는 책의 세 번째 부분으로 묶인 글들이 특히 재미있었는데, 대개 타인을 배려하지 않거나 서로 존중하는 행위를 잊은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불만(?)이 담겨있는 메모들이다. 전철이나 식당 등 이른바 공공장소로 명명된 곳에서 유독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사람, 좁은 길모퉁이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차를 세워놓고 미안해 하기는커녕 유유자적하게 자신의 볼일을 보는 이, 산이 떠나가라 크게 라디오를 켜고 늠름히 산을 오르는 등산객 등을 묘사하면서 작가는 다른 이들을 좀더 배려할 줄 아는 문화가 이루어지기를 조심스럽게 바란다. 그렇다고 아이를 꾸짖듯 계몽적인 투는 아니어서 더 공감하는 측면이 있다. 한편으론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해왔던 것은 아닌지 움찔할 때도 있었고. 왜 그렇잖나,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자신의 단점은 다른 이가 콕 집어주기 전까진 자각하지 못하게 마련이니까.

<농담하는 카메라>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서른 살의 강>에서 보았던 성석제의 단편소설이 있었다. 매력적인 문체로 가상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처럼 실제 삶의 편린도 그렇게 소개해주리라는 기대로. 책을 읽으면서 이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고, 또 어느 정도 배신되었다. 소설가 성석제의 일상을 편안하게 훑어가다 보면 나와 비슷한 부분에서는 끄덕이며 공감을,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선 새로운 경험을 한 것처럼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수필이 주는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기대했던 것보다 담담한 그의 말투. 이건 한편으론 제목이 주는 부질없는 기대감이기도 한데, <농담하는 카메라>에서 ‘농담’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익살스러움은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한마디로 조금은 심심하다는 얘기다. 다행인 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작가에 대한 기대감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그의 다른 소설들로 채워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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