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강 (은희경, 김소진, 전경린 외)



서로 다른 감독들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나 <서른 살의 강> 같은 이런 테마소설집들의 장점은 각기 다른 개성들이 모여있는 만큼 그 다양성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작가들간을 비교하거나 그들에 대한 감상자로서의 호부를 피해갈 수 없기도 하다. 여러 작품을 읽으며 느끼는 좋고 나쁨의 차이. 어떤 것은 버려지고 어떤 것은 선택되는 취사선택의 유혹. 말하자면 이런 형식의 결과물들을 감상하는 것은 많은 창작자들 가운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도 동시에 거리를 둘 대상을 솎아내는 과정도 동반한다.

<서른 살의 강>에는 모두 9명의 작가들이 써낸 짧은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나이를 가리키는 ‘서른’이라는 숫자를 소재로 탄생된 단편들이다. 각 소설들은 이 소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각기 달라서 어떤 작품은 이 화두를 작가 내면에 잡아둔 채 그 정서를 치밀하게 풀어내려 하고 또 어떤 작품은 주어진 그 숫자를 소설 안에서 그저 가벼운 하나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어떤 태도로 이 소재를 그려내든 간에 이 책을 보는 동안엔 ‘서른’이라는 단어가 내내 씹힌다. 마치 쌀밥에 스며든 흙 알갱이처럼. <서른 살의 강>을 읽는 동안은 죽 그런 느낌이었다.

어떤 단편의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해서 ‘서른 살’이라는 단어를 매개 삼아 지나치게 내면으로 침잠해 가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자면, 이게 혹시 소재로부터 얻은 한정되고 빈곤한 상상력이 되레 과잉 수사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하긴 주어진 하나의 소재에 대해 리포트 써내듯 이야기를 짜내야만 했던 작가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 책 안에 담긴 몇몇 글로부터 ‘서른’이라는 하나의 숫자에 지나치리만치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 혹은 그것이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일거라는 때이른 확신 같은 것을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꼭 그것이 작가들의 탓 만은 아니리라.

우리도 때로는 그러하니까. 누군가는 마치 결코 넘어서기 힘든 벽처럼 느껴질 이 나이. 다른 누군가에겐 단지 앞자리만 바뀐 숫자에 불과한 이것. 혹은 여기서 그 싱싱한 젊음을 정확히 딱 잘라내고 무거운 책임감만이 남은듯한 ‘서른’. 그 어떠한 태도나 반응도 다양한 인간군상 안에서라면 모두 가능한 것일 터이다.

나로선 ‘서른’을 수식할 아무런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건 그다지 특별하지도, 그렇게 엄청나지도 않은 단순한 숫자일 뿐이다. 한쪽으론 다 컸다고 느끼면서도 아직은 어리다고 속삭이는 내면을 안고 어느새 지나쳐버린 이 숫자. 애써 형용할 어휘들을 찾는 것 자체가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굳이 말하자면 전과 같은 활동량임에도 몸이 조금 더 피곤해지거나, 타인의 동안이라는 말 한마디가 귓가에 더욱 찰싹 달라붙는 그런 나이. 아, 이 너무나 메마른 감성.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그렇다고 이 소설집에 ‘서른’이란 화두로 사색에만 몰두하여 그 숫자에 무겁게 깔려있는 그런 단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성석제의 ‘황금의 나날’ 같은 작품은 이 특정한 나이를 여전히 소재로 쓰면서도 소설 속에 여러 가지 다양한 감정들을 고루 펼쳐놓는 내공을 보여준다. 주인공 소년이 어른이 되는 시기를 상징하는 ‘서른’은 그의 성장과정의 일종의 동력이 되는데, 여기엔 친구의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를 향한 사춘기 소년의 일반적인 환상, 학원스포츠를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어른사회의 단면 등 꼭 ‘서른 살’이라는 소재에만 집착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서술된다. 꽤 매력적인 성장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서른 살의 강> 안에서 이 성석제의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면 결혼과 연애에 대한 세계관(특히 여자의 입장에서)을 흡인력 있게 풀어놓는 은희경의 ‘연미와 유미’도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그러고 보면 <서른 살의 강>은 ‘서른 살’이라는 특정 나이에 대해 독자 각자가 가진 저마다의 생각에 따라 그 감상이 마구 바뀔 수 있는 소설집이다. 나로서는 큰 의미가 없었던 이 숫자가 다른 누군가에겐 혹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을 의미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내가 성석제의 소설을 인상적으로 읽었다면 혹자는 나머지 작품들에서 깊은 공감을 얻어낼 가능성도 있다. 다양한 작품들만큼 다양한 반응. 이것이 옴니버스 형태의 소설집이 가진 하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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