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서 찾아낸 오래된 '헤비메틀'

 

지금이야 mp3 파일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각종 웹사이트들이 다양한 음악소식을 전하고 있어 관심있는 음악정보를 만나기가 직간접적으로 수월해졌다.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밴드의 음악을 미리 들어보거나 그들의 홈페이지에 들러 바이오그래피나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목록을 하나 둘 늘려가는 것이다.

음악에 조금 깊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는 9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그전에는 차트에서 활약하는 몇몇 가요와 팝만을 들어왔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음악 듣는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불현듯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 뇌리에 파고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전이 그저 주어진 음악을 받아먹었던 때라면 그 이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 듣기 시작했을 뿐이랄까. 몰랐던 아티스트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때의 나에겐 굳이 헤비메틀 팬이 아니라도 알 수 있었던 메탈리카(Metallica)나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조차도 무척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러니 새로 펼쳐진 헤비메틀의 바다는 말 그대로 새로움의 보물상자나 다름없었다. 하루하루 접하는 음악들이 너무나 신선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처음엔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 그 다음엔 메탈리카, 그 이후엔 수많은 미지의 밴드들로 그 관심의 가지가 뻗어나갔다.

 

2000년대 초반의 핫뮤직. 구입해서 보기 시작했던 90년대 중반의 핫뮤직은 어쩐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오래 전에 버린 것 같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 정보의 출처는 대개 출판물이 주를 이뤘다. 물론 친구의 추천도 있었지만 주위에 메틀에 심취한 녀석들은 극히 드물었으며 고작 있어봤자 메탈리카의 신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 녀석들과는 메탈리카와 드림 씨어터 즈음에서 관심의 교집합을 이뤘을 뿐, 그 후엔 각기 다른 방향으로 그 가지를 뻗어나갔던 것 같다. 세상엔 흑인들이 만들어내는 좋은 음악도 많고 당시 주류 음악과 차별화된 국내 인디씬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관심사는 적당히 다른 방향으로 분류되어 나아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중 내가 가장 편협한 시각을 가졌던 듯하다. 어쨌든 그리하여 필요한 정보는 각자 구하는 쪽으로, 그래서 나에겐 헤비메틀 관련 출판물의 도움이 가장 절실했다.

<핫뮤직>이 있었고 <라킷(Rockit)>이 있었다. 잡지는 그 둘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헤비메틀 대사전>과 <헤비메틀 음반가이드>가 있었다. 정보의 습득방법이 꽤 제한되어있던 그때 이 책들은 꽤 유용했다. 음반구입을 할 때 잡지 다음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헤비메틀 대사전>, 조성진, 삼호출판사

이제와 얘기하건대 이 글은 사실 베란다 바깥쪽의 책장을 정리하다가 실로 오랜만에 찾은 이 두 권의 책 때문에 쓰여지고 있는 중이다.

 

 

<헤비메틀 음반가이드>, 정진용, 삼호출판사

<헤비메틀 대사전>의 경우 특정 밴드의 멤버소개는 물론 디스코그래피, 바이오그래피, 그리고 밴드의 음악적 특징을 설명하는 사운드체크 등을 모두 담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핫뮤직>의 편집장이었으며 기타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저자가 쓴 책답게 기타리스트를 설명하는 부분은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헤비메틀 대사전> 속의 밴드들은 사실 헤비메틀이라는 분류보다 Rock으로 뭉뚱그려 묶을 수 있을 만큼 꽤 포괄적이다. 책에는 당시 시대를 지배했던 너바나(Nirvana)나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같은 그런지 밴드들도 포함되어있으며,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이나 프리(Free) 등의 고전 밴드들도 소개되어있다.

 

 

지미 헨드릭스를 소개한 부분. Rock계에 끼친 영향력의 크기만큼 많은 페이지가 할애되었다.
메가데스의 사진. 이 책을 통해 밴드의 디스코그래피대로 음반을 수집하는 습관도 생겼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헤비메틀 대사전>이 하나하나의 밴드에 초점을 맞춘다면 <헤비메틀 음반가이드>는 좀더 음반에 집중하는 책이다. <헤비메틀 대사전>도 그렇지만 솔직히 이 책도 소개하는 밴드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좀 모호하기는 하다. 일단 장르로 구분해도 그리 세분화되어 있는 편은 아니었고(<헤비메틀 음반가이드>에도 얼터너티브 밴드들의 음반이 꽤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음반이 몇 만장 이상 팔린 아티스트들이라던가 공연 시 일정 이상의 관객동원이 가능한 밴드들을 중심으로, 같은 일정의 선정기준은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랜덤이라는 얘긴데, 그래서 주다스 프리스트 같은 초거대 밴드에서부터 자국 내에서조차 큰 영향력이 없어 보이는 시크리시(Secrecy) 같은 밴드의 음반들이 한 책에 함께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점 때문에 더욱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남들이 잘 모르는 나만의 밴드를 갖는다는 것은 좀 특별한 경험이다. 지금이야 검색어 하나로 밴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대이니 그런 재미는 좀처럼 느껴보기 힘들지 않은가.

 

 

<헤비메틀 음반가이드>의 목차. 아마도 되도록 인지도를 고려하여 선정된 밴드와 음반들일 것이다.
<헤비메틀 음반가이드>의 한 페이지. 머시풀 페이트(Mercyful Fate)와 메틀 처치(Metal Church)의 음반이 소개된다.

누가 장학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밴드의 디스코그래피를 외우고(사실 외우진 않고 책을 들춰봤을 뿐이지만), 용돈이 마련되는 족족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해당 음반을 구입하는 그때와 같은 시기는 아마도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기의 열정이라 부르긴 좀 쑥스럽고 미래를 향한 꿈의 시작이라 칭하기엔 지금의 모습이 참 생소하다. 이제 꿈은 사라졌고 열정은 희미해져 간다.

 

 

<핫뮤직> 등의 잡지와 함께 이 두 권의 책이 나의 음악취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누굴 탓할 것도 없이 그것이 세월이 가져다 준 반갑지 않은 선물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듯한데, 오랜만에 이 두 권의 책을 마주하니 모든 것이 그대로였던 그때 생각이 난다. 좋아하는 밴드의 연대기를 훑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들의 음반을 집어 들고 환희의 미소를 지었던 여드름투성이의 그 소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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