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시민 / Law Abiding Citizen (2009)

F. 게리 그레이의 신작, <모범시민>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의 감정은 볼 일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화장실을 떠나야만 하는 어느 불행한 사람의 그것과 매우 유사할 지도 모른다. 미국 법 체계의 불완전성을 떠보려는 시도가 살인자의 손에 가족을 잃은 한 가장의 사이코드라마로 확장되더니, 이내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테러리스트의 복수극으로 발전하다 끝내 허무한 엔딩에 종착한다.


이런 저런 갈래로 피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의 가능성들이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한 채 관객을 어정쩡한 길 한복판에 서 있게 만든다. 영화가 기상천외한 테러의 전시장이 되려 했는지, 세상을 향해 복수의 X침을 날릴 수 밖에 없는 비정한 부성(父性)을 강조하려 했는지, 아니면 출세를 목표로 한 현실주의자들의 독무대가 된 미 법조계를 풍자하려 한 것이었는지, 관객은 그 의도를 파악하기도 전에 영화의 엔딩 출구를 열고 나와야만 한다.



범죄의 피해자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테러리스트로 변해가는 주인공 클라이드(제라드 버틀러)와 검사 닉(제이미 폭스)의 대결구도가 <모범시민>의 핵심이다. 닉은 클라이드의 가족을 살해한 범죄자들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이유로 세상을 향한 이 불행한 남자의 테러의 실질적 타겟이 된다. 잘 단련된 복근을 자랑하며 ‘스파르타’를 외치던 제라드 버틀러나 레이 찰스의 모습을 실감나게 구현해낸 이력이 있는 제이미 폭스의 이름값만 본다면 <모범시민>은 두 배우의 카리스마가 충돌하는 격전지가 되었어야 했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영화의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광기에 사로잡힌 제라드 버틀러. 그에 비해 제이미 폭스는 존재감을 잃는다. 이는 아마도 배우 탓이기 보다는 극중 역할상의 설정 때문일 것이다. 본래 격렬히 감정을 분출하는 ‘센’ 역할이 배우의 노력대비 효과가 좋다고 한다. 제이미 폭스가 연기하는 닉은 정의라는 이상과 모순된 법체계라는 현실, 그리고 개인적 출세욕구 사이에서 길 잃은 인물이다. 어쩌면 영화를 보고 있는 대다수 우리와 가장 닮아있는 평범한 현실감각의 소유자. 다시 말하면 다분히 평면적인 인물이다.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파멸시켜 버릴 듯한 기세의 클라이드와 대결하기엔 다소 심심한 캐릭터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 완벽하지 않은 선인의 대립을 그리는 영화는 관객의 상상력을 단순한 단계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복잡한 감정의 장으로 몰고 간다. 여기서 영화 보는 맛이 제대로 생기는 경우가 있다. <모범시민>도 그런 영화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정의가 실현되기 불가능한 세상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던 제라드 버틀러의 냉소적인 표정 외에 그 어떤 것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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