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찾을 수 있는 곳, '빨간책방'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출근 준비 와중에 맥북을 켠다. 게슴츠레 뜬 눈, 눈꺼풀 틈으로 뿌옇게 보이는 화면. 눈 앞이 보이든 말든 손은 익숙한 동작으로 아이튠즈를 실행한다. 보관함을 클릭하고 팟캐스트 메뉴를 선택한다. 그 중 한 방송의 새 에피소드를 받기 위해 업데이트 아이콘을 누른다. 위장과 소장을 알코올의 무법천지로 만든 날이 화요일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가 제정신임을 알게 된 경우에는, 대개 매주 이 기상 후 행위를 반복한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운영하는 '빨간책방'에 들르기 위해서다.


최근 한 해 동안 그 전에 비해 많은 책을 구입했다. 내 길지 않은 인생사를 돌이켜 보건대, 근 몇 개월간은 좀 무리한 것도 같다.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의 옆구리가 불룩하게 느껴질 만큼 꾸역꾸역 담아놓은 종이책과 전자책을 탐욕의 클릭질로 내 책장과 아이패드, 아이폰으로 옮겨놓는 행위가 어느새 내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가 된 것은 아닌가 자문해본다.

나는 왜 책에 집착했을까? 그건 책을 향한 무한한 애정, 혹은 책을 읽지 않으면 발전 없는 인생을 살 것만 같은 자기계발서적적(的) 공포심 때문이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책 없는 인생도 너끈히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또 책 한 권 읽지 않고도 자신의 삶에 떳떳하고 인생의 통찰을 얻은 사람들도 적잖이 보인다. 책을 읽으면 인간과 사회와 나 자신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삶이 즐거워 진다는 것은 내 경우엔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이 풍요로운 삶을 위해 책을 보아야만 하고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독서를 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에게 책만큼 혹은 책보다 중요한 것은 수없이 많다.

어쩌면 나는 책을 보는 것보다 구입하는 것 자체를 더 즐기는 지도 모르겠다.

아이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후 애플의 신제품을 소개하는 키노트를 볼 때마다 실상 별 필요도 없는 기기들을 사고 싶어지는 것처럼, 하나의 소비행위에는 이어지는 소비행위를 잡아 끄는 중독성이 있다. 아이폰이 아이패드를 사도록 부추기듯이, 내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이 휴지에 스며든 물처럼 다른 책으로의 욕심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얼마간의 지식욕, 오락으로서의 독서가 주는 쾌락, 그리고 타인에게 나는 이런 저런 책을 읽어왔다고 전시하고 싶은 촌스런 허영심도 책을 사는 행위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어쨌든 새 책을 책장에 꽂아두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책과 관련된 컨텐츠도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각종 매체에 소개된 작가들의 인터뷰를 찾아보게 되고, 소설가들의 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도 몇 개 보았다. 책을 다루는 팟캐스트 방송을 검색하게 된 것도 온라인서점의 회원등급이 올라가기 시작하던 그 무렵부터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2012년 봄 즈음, 마침 첫 번째 에피소드가 업로드 되던 시기였다. 그 후 새 에피소드가 만들어질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 들었으니 TV로 치면 매 회 '본방사수' 한 셈이다.

'본방사수'는 물론 재방송도 자주 듣는다. 외근 시 차 안에서나 체육관의 러닝머신 위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서 혹은 주말에 밀린 집안 일을 할 때, 때로는 편안한 자세로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빨간책방>을 듣는 것은 내 나름의 오락이 되었다. 두 시간 남짓 이어지는 책을 매개로 한 대화는, 책에 대한 경외와 호감을 간직한 채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들어 듣고 있으면 즐겁다.

이는 전적으로 이 팟캐스트의 두 주인장인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가 김중혁의 차진 호흡 덕분이다. (책방 간판엔 한 사람의 이름만 걸려 있으나 이제는 두 사람이 책방 문을 함께 여는 동업자 같은 느낌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책 분석을 통해, 신선한 재료를 정교한 칼질로 다듬어 재료의 숨겨진 맛을 찾아내는 평론가 본색을 드러낸다. 소설가 김중혁의 멘트는 그의 소설처럼 자유롭고 엉뚱한 상상력과 작가적 감수성의 도막이 그 위에 얹혀져 있어, 상하좌우 꽉 막힌 내 통조림 뇌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부분에 닿아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신선하고 재미있다. 내가 읽었던 책을 다루는 에피소드를 듣거나, 혹은 <빨간책방>에서 소개된 책을 뒤늦게 읽은 후 방송을 다시 들을 때, 두 사람의 의견에 공감도 하고 거기에 내 나름의 생각도 더해보면서 책 읽는 재미는 배가된다.


당분간 책 사재기를 멈추고 책 구입의 속도에 비해 책 읽기의 그것을 한 템포 올려볼 생각이다. 단, 내 '책 구매 억제정책'에 하나의 예외조항을 두었는데, 그건 <빨간책방>에서 소개하는 도서 중 내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으면 그건 내 책장으로 옮겨 놓자는 거다. 책방 주인장의 안목을 믿는다. 오래도록 문 닫지 않고 매주 찾아갈 수 있는 책방으로 남아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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