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캔, 음악 한 모금

얼마 전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행사로 저렴하게 나온 버드와이저와 하이네켄 맥주를 여러 캔 사뒀다.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수를 아주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은 한밤중에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아마도 요즘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다. 사둔 맥주는 매일 밤 홀짝홀짝 한 캔씩 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예전엔 한 캔만 마셔도 배가 더부룩하곤 했는데 요즘은 어째 괜찮다. 시원하게 목을 타는 느낌이 좋다. 날마다 조금씩 늘어날 뱃살이 약간 걱정되긴 하지만 이번에 사둔 거 다 마신 후 다시 열심히 운동하면 되지 뭐. 오히려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제때에 못하면 정신건강에 해롭다.

 

맥주는 술이 아니라 음료수에 가까우니 안주가 굳이 필요 없겠지만 언제부터인지 짭짤한 프링글스를 습관이 되어버린 듯 곁에 두고 마신다. 아마도 예전 누군가가 추천해 준 이후로 계속된 버릇인 것 같다.


맥주를 마실 땐 음악을 듣는다. 영화나 TV를 봐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지만 최근엔 헤드폰을 끼고 가만히 음악을 감상한다. 어느새 요 며칠 동안 공연장의 셋리스트처럼 나만의 버드와이저 배경음악목록이 생겼다. 뭐 사실 맥주에 어울린다기 보다 그때그때의 내 마음상태와 관련 있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낮은 도수임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마시다 보면 맥주의 알코올이 은근히 몸을 나른하게 해주는 것처럼 이 음악들도 그렇다.

 



Neal Schon - Big Moon [Beyond The Thunder]


닐 숀의 95년 솔로앨범 [Beyond The Thunder]의 첫 트랙이다. 저니로 활동할 때에는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서도 날카롭게 번뜩이는 솔로를 보여준 그이지만 이 솔로앨범은 서정적인 연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동안 이 곡만 듣고 다녔는데 저니의 또 다른 핵심인 조나단 케인이 함께한 앨범이라 그런지 연주음반이면서도 매우 대중적인 느낌이다. 닐 숀이 기타로 들려주는 멜로디가 귀를 쉽게 떠나지 않는 그런 앨범. 로맨틱한 멋진 연주곡. 맥주보다는 와인에 어울리려나…

 



Michel Petrucciani, Steve Gadd, Anthony Jackson - September Second
[Trio In Tokyo]


글쎄 뭐랄까, 조금 쓸쓸하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뮤지션의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그런 느낌이다. 미쉘 페트루치아니의 피아노 연주를 특별히 좋아한다던가 하는 뚜렷한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연한 만남이 긴 인연을 만드는 것처럼 September Second는 언젠가 마주친 이후로 가끔씩 듣고 싶어지는 그런 곡이다. 이쪽 계열의 대가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연주임에도 갑갑한 권위의식 없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도 좋다.
 



Tom Petty & The Heartbreaker – Free Fallin’ [Anthology: Through The Years]

 


카메론 크로우의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보면 영화 초반 주인공 제리가 차를 몰면서 라디오를 따라목청껏 부르는 노래가 있다. 바로 탐 페티의 Free Fallin’. 로큰롤이라는 장르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멜로디와 코드진행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반드시 몇 단계씩은 구성을 꺾어줘야 인정받는 대중의 평가기준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인기 있는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이 곡은 세 개의 코드와 무척 단순한 멜로디 속에 담긴 그 시원한 청량감이 매력적인 노래다. 맥주 이외에 영화 속 탐 크루즈처럼 드라이브 할 때 들어도 좋은 노래.

 



M
r.Big – You Don’t Have To Be Strong [Deep Cuts]

 


미스터빅의 발라드를 일부는 리치 코젠과 재녹음해서, 다른 몇 곡은 예전 폴 길버트 버전 그대로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 [Deep Cuts]의 수록곡으로 You Don’t Have To Be Strong은 다른 앨범엔 없고 이 음반에만 있는 새 노래다. 이 곡에선 에릭 마틴과 리치 코젠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쓸데없는 지분싸움이 없는 두 걸출한 보컬리스트의 평화로운 공존이 듣는 사람 또한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원래 테잎으로 구입했던 앨범인데 이 노래 한 곡 때문에 CD로 다시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군대 시절 정말 많이 들었던 노래.

 



Dream Theater – Trial Of Tears [Falling Into Infinity]


드림 씨어터의 앨범 중 가장 푸대접 받는 [Falling Into Infinity]의 마지막 트랙. [Awake] 이후 내놓은 앨범의 색깔이 전작과 너무나 다르니 그런 반응도 이해가 되지만 색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이 음반은 놓치기 아까운 노래들이 많이 포진된 앨범이기도 하다. 특히 드림 씨어터의 그것이라고 믿기 힘든 Hollow Years, Anna Lee 등의 슬로템포의 곡들은 개인적으로 적잖이 당황스러웠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앨범 중 자주 듣는 트랙들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했던 곡은 드림 씨어터 특유의 대곡지향 성향이 여전한 Trial Of Tears. 세 파트로 이루어져 긴 한 곡을 이루는 이 13분짜리 노래는 마지막 파트인 The Wasteland가 그 제목으로 알려주듯 그 황량한 느낌이 매력적이다. 혼자 마시는 맥주가 쓸쓸할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어쨌든 요즘은 이 노래가 자꾸 당긴다.

 

Neal Schon – Big Moon

출처: 유튜브 Mario Aparicio 채널

 

버드와이저 한 캔을 다 비웠다. 프링글스는 조금 남았다. 음악은 닐 숀의 Big Moon에서부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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