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턴 프라미스 / Eastern Promises

* 스포일러 포함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마치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의 불길한 운명을 주조해내는 괴팍한 조물주처럼 보인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숨쉬기 힘들만큼 답답하고 기괴한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무거운 압력을 견뎌내야 한다. 때로는 지켜보고 있는 관객으로서의 행위 자체가 호기심과 괴로움, 이 양 갈래의 감정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것인지조차 잊을 때가 있다. 혹은 스크린 밖의 자신이 다행히도 크로넨버그가 만든 이 숨막히는 세계에 편입되어 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다거나.

영국을 근거지로 한 러시아 마피아의 이야기를 그린 <이스턴 프라미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초현실적인 배경은 등장하지 않은 채 사실적인 공간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점이 그의 그로테스크했던 몇몇 이전 작품들과 다를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린 소녀들이 거짓말에 속아 팔려나가거나 도심의 복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이 일어나는 이 세계를 보고 있자면, 그간 이 조물주가 창조해왔던, 마치 그 지옥도와도 같은 처절한 세계관을 <이스턴 프라미스>에서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주요인물들의 배경을 통해 보여주는 영국의 겉모습은 차분하다. 특별한 강조 없이 런던의 거리를 바라보는 화면은 무언가를 도드라지게 보이게 하려 애쓰지 않는다.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아무 면식 없이 지나치는 이 거리. 각자의 삶에 주어진 운명대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시민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세계는 그것과 평행선을 이루는 것만 같았던 폭력의 세계와 우연히 조우하면서 그 평화로운 존속에 위협을 받는다. 매춘부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출산과 함께 사망하는 사건이 있은 뒤, 그녀의 일기장을 보게 된 병원의 조산사 안나(나오미 왓츠)는 이 뒷골목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다. 그녀는 침대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아기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아기에 대한 안나의 감정은 일견 이 조그만 생명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동정과 모성이 서로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전 애인과의 사이에서 가졌던 태아의 죽음과 연결되어 필사적인 보호본능을 자극 받고 있는 듯도 하다. 죽은 소녀의 일기 때문에 러시아 마피아의 세계로부터 안전을 위협받기 시작하면서 그 감정은 더욱 커져간다.



여기에 조직의 운전사 니콜라이(비고 모텐슨)가 등장한다. 보스 세미온(아민 뮬러-스탈)의 아들 키릴(뱅상 카셀)과 늘 함께 다니는 그는 혈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 세계에 완전히 속해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안나와 같은 평범한 인생으로 돌아갈 길도 없는 존재다. 이런 니콜라이와 안나가 만나고 세미온과 키릴이 이야기에 끼어들면서 아무일 없을 것 같은 런던의 거리가 점점 악의 근원을 숨기고 모른 채 하는 의뭉스런 공간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영화의 마지막은 희망적인 어조 안에 일말의 체념이 섞여있는 듯한 모양새다. 니콜라이가 그 정체를 드러내고, 인자한 노인의 얼굴을 한 악마 세미온은 조직의 권좌에서 내려온다. 위협하는 존재가 사라진 죽은 소녀의 아기는 안나의 손에 의해 잘 자라나고 있다. 적어도 겉모습만으로는 평화롭다. 마치 모든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하지만 도시의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더 나은 삶을 찾아 영국 땅을 밟았다가 처절하게 죽었던 소녀의 내레이션을 배경으로 니콜라이의 얼굴이 비춰진다. 세미온의 자리를 대신한 그는 결과적으로 아기를 구해낸 셈이지만 그 무표정한 얼굴은 마치 바뀐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담보로 유혹하는 악마의 속삭임이 여전히 넘쳐나는 세계. 폭력과 착취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스턴 프라미스>의 얼굴은 단연 비고 모텐슨이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대형 판타지 프로젝트를 통해 근엄하고 용맹한 왕의 풍모를 너무나 확실히 각인시킨 이 배우는 <이스턴 프라미스>에선 눈빛만 봐도 어깨가 움츠러들 그런 맹수와도 같은 표정을 보여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차가운 런던 뒷골목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만 같은 강인한 생명력을 머금은 채. 영화가 진행될수록 비고 모텐슨이 연기하는 니콜라이에게 쉽사리 다가갈 수 없으면서도 왠지 그에게 점점 신뢰를 주고 싶어지는 이유는 그가 가진 이런 단단한 이미지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가 마지막에 다다르면 그것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그리 되도록 미리 짜인 감정의 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문무와 덕을 모두 겸비했던 인간계의 왕은 그 흔들림 없는 이성을 이 비 오는 런던거리까지 그대로 가지고 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