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질링 / Changeling (2008)

전화국에 근무하는 크리스틴 콜린스(안젤리나 졸리)는 아들과의 영화약속을 뒤로 하고 직장동료의 부탁으로 출근한다. 빗나간 일정만큼이나 불안한 하루가 지나간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사라졌다. 이웃을 수소문해보고 경찰에도 연락해보지만 아홉 살 난 아들 월터는 나타나지 않는다. 엄마의 초조한 심정엔 아랑곳 없이 경찰의 대응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기꺼이 들으려 하지 않다가 마지못해 실종신고를 접수 받는다. 긴 나날들이 지나가던 어느 날 경찰로부터 월터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크리스틴을 기다리는 건 생명부지의 어린아이. 얼굴이 다름은 물론 키도 자신의 아들보다 작고 어디서 포경수술까지 해온 이 의문의 아이를 경찰은 크리스틴의 아들 월터와 동일인이라 우긴다. 여전히 생사도 모르는 아들을 생각하면 엄마는 속이 타는데 경찰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영화에서 폭력의 대상이 되는 계층은 둘이다. 여성과 아이. 정치적, 사회적, 물리적 힘에서 약한 존재들이다. 안정적인 경제적 지위를 획득한 크리스틴 콜린스에게 그녀의 사회적 위치는 오히려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정신병의 빌미가 된다. 돈 잘 버는 싱글맘이 자신의 자유를 구속한다며 아이가 제대로 돌아왔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 정치적, 사회적, 물리적 힘을 가진 남성을 곁에 두지 못한 이 여자는 모성애 따위는 집어치운 채 방종을 일삼으려는 음탕한 여인으로까지 인식된다. 경찰은 자신들을 성가시게 만드는 그녀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어둔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시도들로부터 차단당한 아이는 안전장치 없이 범죄세계의 위험에 노출된다. 아이를 위험하게 하는 직접적인 존재는 살인마이지만 책임감 없는 경찰에 의해서도 위협을 받는다.

 


무능한 공권력과 엽기적 살인마 같은 사회공공의 적에게 통쾌한 복수의 한방을 날린다는 점에서 <체인질링>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돌아온 ‘해리 캘러핸’이라 부르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체인질링>에서의 그 과정은 열혈 형사의 무자비한 자체판결에 비해 격정을 삼키며 매우 치밀하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전개된다. 시민의 안위 따위는 잊은 채 산탄총을 꺼내 마피아 길들이기에만 집중하는 경찰에게 집단행동을 통해 시민들의 의식을 전하는 것이나 아이들만 골라 살해하는 괴물 고든 노스컷(제이슨 버틀러 하너)을 교수형의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과정이 조심스럽게 천천히 전개된다. 복수는 결국 성공하지만 가슴속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체인질링>이 총알 한방에 시원한 판타지를 꿈꿔도 되었던 <더티 해리>와 다른 점이라면 바로 이것이다. 어느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 끔찍한 사건은 ‘이것은 실화다’라는 영화의 전언으로 인해 생생한 현실로 둔갑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현실의 몇몇 상황을 묘하게 생각나게 한다.

물론 <체인질링>이 주변의 부조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막기 위해 연쇄살인사건을 이용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힘없는 시민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정치적 힘의 논리로서 기능하는 영화 속 경찰권력으로부터 마치 현실의 일부를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어느 기사를 보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고든 노스콧의 사형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다 한다. 여성이든 아이이든 힘없는 자들의 생명을 가지고 노는 사이코패스들에게 동정의 눈길을 베풀 여지는 없다. 공공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복수의 과정에 이 노년의 감독처럼 통쾌함을 느낄 이들도 많을 것이다. 헌데 더 중요한 것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공적 권력기관의 폭력이다. 이는 그 영향력이 일개 살인마의 그것보다 더욱 클 뿐만 아니라 훨씬 치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그래서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근데 현실이라면 <체인질링>에서의 경찰서장의 사퇴보다 살인마의 사형에 더 관심을 가질 이들이 많다. 우리들은 살인마의 죽음으로부터 구현된 정의를 발견하는 것일까, 아니면 천박할 때로 천박해진 호기심의 충족, 혹은 대상 없는 분노의 해소만을 얻어내는 것일까? 만약 후자에 더 무게가 간다면, 그로 인해 마침내 드러난 공권력의 횡포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면 지금 웃고 있을 이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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