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3 / Spider-Man 3 (2007)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한껏 들떠있다. 도시의 전광판이 거미복장의 영웅으로 도배되고 시민들은 그의 등장에 환호한다. 이미 도시의 치안에 큰 도움을 주는 스파이더맨으로서는 곳곳에 처 놓은 거미줄을 제거할 방법을 두고 시 당국이나 건물주들과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 손발의 갈퀴로 유리벽을 타느라 생긴 스크래치 같은 것에 누가 신경이나 쓸까. 코스튬을 벗으면 또 어떤가. 경제적 상황이 그리 좋진 않지만 자작사진을 구입해주는 데일리 뷰글이 있고 본업인 학업도 순조롭다. 닥터 옥토퍼스와의 힘든 대결과 병행해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의 사랑도 얻었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피터 파커로서 말이다.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이 영웅의 앞날엔 당분간 장애물이 없을 듯 하다.


이 거미청년의 이야기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그 규모가 확장되고 있다. 그래도 전편까지는 한 명의 악당만을 상대하느라 비교적 수월했다. 이번엔 무려 세 명이다. 경비가 허술한 과학실험현장에 휘말려 모래인간이 된 탈옥수 샌드맨(토마스 헤이든 처치)과 외계에서 온 기생생물체 베놈, 그리고 파커의 오랜 친구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원수가 되어버린 해리 오스본까지, 스파이더맨이 물리쳐야 할 괴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이것 참 버겁다. 영화의 시작, 적어도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갈 것만 같았던 피터 파커의 인생이 꼬여가는 소리가 들린다. 위기는 모든 것이 잘 흘러가고 있을 때 더 크게 다가오나 보다. 그런데 이 인생의 고난 길이 시작된 이유가 비단 괴물 같은 삼총사 덕분만은 아니다.

 


<스파이더맨 3>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특성상 전편들보다 강력해진 액션씬들 외에도 인간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주위를 흐트러뜨리는 드라마들로 채워진다. 사랑의 합일점을 찾는 듯했던 메리 제인과의 관계가 삐걱댄다. 승승장구하는 스파이더맨은 배우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한 메리 제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남자친구를 곁에 두고 위로를 받고 싶지만 범죄현장이 그를 먼저 채간다. <스파이더맨 3>는 슈퍼히어로의 남루한 인생을 비교적 경제적 측면에서 조망했던 전작들보다 주인공의 애정 문제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


피터 파커의 이중생활을 평생 이해해줄 것만 같았던 메리 제인의 결심은 사실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본인의 능력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깊이 이해하는 초인영웅을 애인으로 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 영화는 메리 제인과 피터 파커 사이에 피어나는 갈등을 이야기의 기본 뼈대로 삼고 있다. <스파이더맨 2>의 마지막, 경찰의 통신내용을 엿듣고 범죄현장으로 달려가는 피터 파커를 바라보던 메리 제인의 어두운 표정은 바로 이것을 암시했나 보다. 영웅이라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의 이 세 번째 작품에서도 이 같은 인간들의 드라마와 스파이더맨과 악당들 사이의 액션장면이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버무려진다. 특히 액션씬의 경우 CG 애니메이션을 잘 활용해 아찔함과 유머, 그리고 통쾌함이 공존하는 장면을 다수 만들어낸다. 여기에 스파이더맨이 도시의 마천루를 거미줄 하나에 의존해 횡단하는 장면은 여전히 시원스럽다.

그런데 악당들이 많아진 만큼 조금 산만하다. 결국 결말에 이르러 선인과 악당의 비율을 맞춰 보다 흥미진진한 클라이맥스를 만들기 위한 설정이었다 하더라도 중구난방의 대결장면들 사이에서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좀체 수월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논리의 비약이 심한 부분도 있고 우연성이 끼어드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다음 편이 기대되는 것을 보면 제작진의 계략이 빗나가진 않았나 보다. 그러나 관객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3편보다는 나은 4편이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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