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책을 다 읽고 역자후기를 본다. 유독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글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을 ‘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 있는 사람들’로 여긴다고 한다. 이 문장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이유는 명백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진 나 같은 독자에게 결코 친절한 저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만큼 글마다의 편차는 있지만 몇몇 글은 신학과 철학과 문학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낸 그 모든 지적 축적물의 얼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책의 제1부에 해당하는 부분은 작가의 일상과 다양한 경험을 유머와 풍자와 패러디로 포장해 읽기 쉽게 진행된다. 물론 이 안에도 작가 특유의 수많은 인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 정도는 별다른 지식 없이도 킬킬거리며 읽어내려 갈 수 있다(또한 책 속엔 친절한 역자주석이 버티고 있다). 책 속의 일부 글들은 미국적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에코의 미온적인 견해(<텔레비전에서 동네의 바보를 알아보는 방법>, <<빨간 모자>라는 동화를 다시 쓰는 방법>)나 주변 사물들의 편이성에 대한 작가의 고찰(<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쓰러지게 하는 방법>, <사용 설명서를 따르는 방법>), 혹은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입장(<텔레비전에서 교수형 생중계를 보는 방법>)이나 언어나 글에 대한 내용(<말줄임표를 사용하는 방법>, <서문을 쓰는 방법>) 등을 다룸으로써 저자의 관심사가 실로 방대함을 직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작은 관심조차도 흥미로운 상상력과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저자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다.

 


어쨌든 책의 일부는 이렇게 큰 참조지식 없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 섹스를 찾는 방법>이나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 같은 글은 공감도 해가면서, 또 낄낄거리면서 읽었다. 아마도 이런 글들은 책을 마주하기 전의 선입관, 즉 이 책은 그의 다른 저작물들과 달리 많은 참조문헌과 지식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는 섣부른 판단에 가장 부합하는 글들일 것이다.

그러나 읽는 이는 책의 뒷부분으로 눈이 옮겨가면부터 에코의 놀라운 상상력은 인정하더라도 독자 자신의 빈약한 레퍼런스 검색기능을 탓해야 하는 사태를 맞이한다. 가령 제1부의 마지막 편인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보자. 제목 그대로 특정 질문에 대한 수많은 역사적, 문화적 인물들의 가상의 대답을 하나하나 제시하는 이 글은 평소 책을 멀리한 나 같은 이들이라면 엄청난 양의 주석 없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글이다. 아니 설령 그 인물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해당 인물이 그가 탄생한 배경의 맥락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다면 저자가 펼치는 상상력의 즐거움을 쉬이 만끽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같은 이들)에겐 건너뛰기라는 기능이 기본옵션으로 장착되어 있는 거다. 읽기 불편한 글들, 아니 안타깝게도 본인의 무능력으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느끼기 힘든 글들은 빠르게 지나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하지만 그런 후에도 다가가기 수월하지 않은 논리적 사고와 복잡한 언어유희와 높은 수준의 패러디로 점철된 제2부와 제3부가 기다리고 있다. 백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이 부분에서 건너뛰기, 혹은 의미해석 없이 빠르게 훑기 같은 내공을 발휘할 수 없는 독자라면 그 언어의 무게에 끝내 짓눌리고 말 것이다. 물론 높은 지적 능력으로 이 모든 것을 오차 없이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책 한 권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려는 독자에게라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한마디로 건너뛰기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이들, 그래서 어느 한 부분을 읽지 않고는 그 책을 다 읽었다 말하기 껄끄러운 사람들 말이다. 이 책은 자신이 서양의 역사와 문화와 문학과 과학에 굉장히 조예가 깊다고 믿거나(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그것을 다시 다양한 언어로 비틀고 재현해 내는 글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를 위한 글들의 모음이다. 나는 후자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그 지적 능력과는 상관없이 움베르토 에코라는 작가의 모든 저작을 살펴보길 원하는 순수한 팬들, 혹은 언제나 한걸음 더 도약하길 바라는 지적 굶주림 상태의 독자들을 위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하냐고? 다시 역자후기로 돌아가보자. 나는 그저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진, 현대사회 매스미디어의 폐해 속에 사는 한 사람일 뿐. 일부를 흥미롭게, 일부를 그렇지 못하게(사실은 매우 고통스럽게) 읽은 나는 이 모든 것을 그 놈의 매스미디어 탓으로 돌리련다. 좀 후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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