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의 유혹 (스탠 콕스)


얼마 전에 읽었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비슷한 책이다. 책의 내용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받는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장 지글러가 기아를 발생시키는 원인과 그 해결책을 알기 쉬운 어조로 말하는 것처럼 <녹색성장의 유혹>의 저자 스탠 콕스도 환경문제를 야기시키는 수많은 원인들을 열거하고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두 저자가 다루는 문제들이 자본주의라는 세계경제 틀 안에선 상당히 해결하기 어려운 것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도, 책을 읽은 후 개별적인 독자가 궁극적인 해결책에 접근하기 어려운 무력감에 빠진다는 측면에서도 두 책은 비슷하다.

<녹색성장의 유혹>은 얼핏 환경문제만 다루는 것 같지만 그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저작은 자본주의의 실질적 지배자인 거대한 자본권력이 환경과 하위계급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에 대한 증언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지구온난화, 유기농 식품, 고갈되는 천연자원 등 자연과 환경에 대한 키워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책의 다섯 째 장의 경우 ‘공장식 농업’, 즉 산업화된 대규모의 농장들이 식품산업의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발생되는 문제를 다룬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변화는 한 곳에서 대량으로 배출되는 폐기물문제뿐 아니라 농장이 들어선 지역의 주민들에게 끼치는 건강상의 문제,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이 겪는 갖가지 산업재해를 야기시킨다. 한마디로 이윤창출이라는 자본주의 최대의 목적을 위해서 환경과 인간 모두 희생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경제적 열매는 기업의 소유주, 투자자들, 중간 유통업자, 상품의 현지 판매자, 공장의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불평등 없이 적절하게 분배될까? 그 과정에서 소모되거나 파괴된 환경의 재생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향상된 생산성은 여전히 자원에너지의 고갈을 향해 나아가고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쪽으로 변모한다. 기업의 이윤 확대의 최대 수혜자는 몇 되지 않는 자본가들이다. 돈이 돈을 모으는 동안 자연과 노동의 요소들은 전보다 더 활발히 소모된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언급된 거의 모든 환경적인 문제는 우리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책에서 밝히는 것처럼 오늘날 병원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꼭 필요하지도 않는 검진을 하게 만들어 수익을 뜯어가는 것, 즉 이윤의 창출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두고 벌이는 병원들간의 경쟁들로 인해 멀쩡한 사람을 병든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동시에 더 좋은 장비의 도입, 더 쾌적한 병실의 확보를 위한 에너지 낭비를 부추기는 꼴이다. 수익의 최대화를 위한 경쟁의 심화가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무차별적인 병원산업의 확대가 국민건강에 도움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저자가 간간이 제시하는 통계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제약회사와 보건의료산업 관계자들이 광고와 로비를 통해 사람들이 앓고 있을 질병의 위험성을 부풀리는 것은 애매한 통계자료와 불분명한 기준을 들이밀며 정상적인 사람들을 병자들로 포섭하여 그들을 잠재적인 수요자들로 만들어내려는 목적일 따름이다.

‘웰빙’이라는 단어와 결합되어 성장한 식이요법 관련 산업의 경우엔 어떠한가. 한국에서는 이른바 ‘황제 다이어트’로 불렸던 ‘앳킨스 다이어트’는 단백질과 지방만으로 식단을 구성하는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방법이다. <녹색성장의 유혹>의 4장에서는 이런 식이요법의 유행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당연히 모든 체질에 맞지는 않을 이 일종의 트렌드는 육류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이어트 상품의 궁극적인 목표가 소비자의 다이어트 실패에 있음을 우리는 종종 망각하곤 한다. 즉 성공률이 높다고 선전된 식이요법을 따르더라도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만약 한가지 방법이 엄청난 성공을 불러일으킨다면 이후의 다이어트 식품시장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기업들은 기름진 음식을 공급하고,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안심을 느끼게 한 다음(어쩌면 약간의 효과와 함께), 또 다시 풍부한 맛과 필요 없이 쌓여갈 지방으로 둘러싼 기름진 음식의 세계로 소비자들을 유도한다. 운동이라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방치해둔 채 이 소비자들은 기꺼이 그 순환고리에 편입되려 한다. 물론 그 사이 이익을 챙기는 것은 다이어트 관련 산업, 병원산업, 제약회사, 식품업계들이다.그리고 ‘앳킨스 다이어트’의 유행처럼 곡류보다 훨씬 막대한 자원의 사용을 필요로 하는 육류산업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할 때 남는 것은 생태계의 파괴뿐.

환경의 파괴는 오로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자행되는 것이며 이는 다시 생활수준 피라미드의 하위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 과정이 지속된다면 지구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른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저자인 스탠 콕스는 이 전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얼굴을 바꾸는 것뿐이라고 한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착취당하는 제3세계의 노동자들이나 끝없이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소모되며 파괴되는 환경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자본주의의 최대 사명은 끝없는 성장과 이윤을 도모하는 일이다. 물론 이 시대의 위정자들은 파이의 크기를 들먹이며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미래가 소수의 자본가들뿐 아니라 경제적 하위계급의 사람들에게도 그 콩고물을 나눠줄 거라 역설한다. 그런데 그 장밋빛 어투 덕분에 언뜻 믿음직해 보이는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녹색성장의 유혹>은 수많은 통계와 연구자료를 인용하며 이를 증명한다.

자본주의의 대안 모색. 저자는 이것이 실패한 공산주의로의 회계가 아님을 밝힌다. 단지 지금처럼 끝없는 성장일변도의 길이라면 한정된 자원은 계속해서 고갈되고 하위노동자들은 멈춤 없이 착취된다. 지구환경의 파괴와 동시에 빈부의 차이도 더없이 심화되는 것이다. 산술적 계산으로는 우리 경제구조가 자연적인 선순환의 길에 들어서려면 경제성장을 둔화시켜야 된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세계경제의 축소가 바람직하다. 경제규모의 축소를 위해서는 결국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몫을 내놓아야 하는데 전망은 밝지 않다. 마치 폭주기관차 같은 그들의 욕망, 즉 있는 자본으로 더 큰 자본을 끌어 들이려는 멈추지 않는 시도는 체제의 인위적인 개편 없이는 그 저지가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 안에서 서두에 밝힌 것처럼 <녹색성장의 유혹>을 읽고 무력감에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결국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현실인식의 또 다른 시각과 해결될 수 없는 분노, 혹은 허탈감뿐이다.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은 암울한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몇몇 학자들과 소규모 그룹들 혹은 스탠 콕스 같은 정보의 고발자들을 통해 꾸준히 모색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이들, 그리고 그 까발려진 내용에 심히 동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은 우리가 완벽하다고 믿는 하나의 체제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다. 스탠 콕스는 책의 서문에서 “바라건대 식품산업과 의료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전지구적 경제 전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시야가 조금이나마 넓어졌으면 한다.”고 미리 밝힌다. 아울러 이 책에서 ‘확실하고 안전한’ 대안은 찾아보기 힘들거라는 이야기도 함께. 일견 힘없는 개인의 부질없는 변명처럼 들리는 이 말들은 비록 지금은 요원한 일이긴 해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뀔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 세계를 끊임없이 주시하라는 언급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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