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2007)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언젠가 라디오 게스트로 나온 노브레인의 이성우는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이 출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이었는데, 그것은 “이준익 감독님은 펑크(Punk)를 훵크(Funk)로 부르시는 것만 빼면 다 좋다”는 식의 장난 섞인 말이었다. 그것이 이준익 감독의 장르의 구분에 대한 혼동인지, 단순한 발음상의 습관을 의미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이성우의 이 장난스런 말이 우습게도 『즐거운 인생』을 향한 나의 ‘오해’를 불러왔음을 인정해야겠다. 음악장르를 헷갈리는 감독이 만드는 밴드영화라면 그 영화의 결과가 어떨지 뻔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오, 이런 건방진 오만.


그것이 지금에 와서 왜 ‘오해’라 불리고 나의 태도가 어째서 ‘오만’으로 불려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나는 보지도 않은 『즐거운 인생』을 그동안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잘못 알아’왔고, 그의 단순한 발음상의 실수를 일종의 교양의 부족으로까지 확대해석하며 ‘잘난 체하고 방자해’왔으니까. 나도 일종의 교양속물이었음을 인정하는 이 부끄러움. 그리고 조심스런 회개.

 


다소 성급한 판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즐거운 인생』은 내가 올해 본 영화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라 말하고 싶다. 아니 이 단어만은 너무 식상하고 단정적이어서 뱉어내기에 망설여지지만, 지금 이 순간엔 그 단어가 절실하다. 이 영화가 바로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말. 『즐거운 인생』은 내가 본 이준익의 영화중에서도 최고작임이 분명하고, 또 올해 개봉작 중에서도 단연 손꼽혀야 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회의 주도세력임에도 늘 현실에 치여 사는 30, 40대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은 물론이며, 왕년의 합주실에서 꿈을 키우던 실패한 뮤지션들의 향수를 달래는 영화다. 그것도 굉장히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절절한 방법으로, 그래서 더욱 효과적으로.

영화 속 주인공들인 기영(정진영), 성욱(김윤석), 혁수(김상호)는 각각 교사 부인을 둔 실직자, 낮엔 택배 밤엔 대리운전을 하는 가장, 항상 해외로 보낸 아이들의 학비를 걱정해야 하는 중고차가게 사장이다. 이들은 대학밴드시절 친구이자 나이트클럽에서의 연주로 여전히 음악생활을 하고 있던 상우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모인다. 장례식을 마치고 상주인 상우의 아들 현준(장근석)이 아버지의 깁슨 기타를 태워버리려 하자 그 기타의 의미를 알고 있던 아버지의 친구들이 그를 막아선다. 죽은 친구의 기타를 집으로 가져온 기영의 머리엔 마치 상욱의 기타에서 젊은 시절의 꿈을 찾아낸 것 마냥 밴드결성의 열망으로 가득해진다. 이에 혁수와 성욱을 찾아가 밴드를 결성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영화는 40대 가장들의 삶을 배열해 놓고 그 세대의 남자들이 겪게 되는 불행한 현실들을 하나둘 적용해 나간다. 여기엔 실직자가 있고 비정상적인 교육열에 부대끼는 아버지가 있고 가족과도 쉽사리 마주할 수 없는 기러기 아빠가 있다. 이러한 어려움들은 물론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겠지만, 한편으론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즐거운 인생』은 주인공들의 젊은 시절의 꿈을 되살리는 것으로 이런 등장인물들을 위로하고, 또한 관객들을 위로한다.

기영과 성욱, 혁수, 그리고 죽은 상우의 아들인 현준이 (재)결성하는 밴드인 ‘활화산’은 결코 인생의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이 상상의 실현이자 현실의 도피일 뿐 삶의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관객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결코 왜곡하거나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는 점이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등장인물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는데, 이는 결국 엔딩에서 그려지는 ‘활화산’의 신나는 공연 이후에도 그들이 이대로 이 사회에, 이 한국에 적응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분 좋은 여운의 엔딩 크레딧을 다 보고 나온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활화산’의 공연에 호응하며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는 영화 속 관중들처럼, 영화 외부의 관객들도 이 영화를 통해 주인공들의 고달프지만 ‘즐거운 인생’을 자신들의 모습에 투영해보는 잠깐의 유쾌함을 경험하게 된다. 『즐거운 인생』은 인생에 관한 어떤 극적인 해결책 없이, 그저 잊고 있던 꿈들을 일깨워주면서 잠시 쉴 틈을 던져주는 목적에 충실할 뿐이다. 너무나 소박한 이 제안, 그래서 오히려 더 감동적이다.


『즐거운 인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이 영화엔 이준익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배우들의 환상적인 호흡이 담겨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혁수가 아내로부터 이혼통보를 받은 직후의 ‘활화산’의 연습장면, 그리고 엔딩의 콘서트 전 돌아온 혁수가 기영과 성욱과 함께, 죽은 상우의 곡인 “즐거운 인생”을 입으로 연주하는 장면. 전자의 장면은 울음을 참으며 드럼을 연주하는 혁수와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멤버들의 모습이 콘서트장면으로 오버랩 되어 이어지는데, 배우 김상호의 너무도 인상적인 연기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이 외에도 이준익의 페르소나 정진영, 시큰둥하면서도 인간적인 김윤석의 연기는 물론, 영화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반항적인 면과 아버지 세대에 대한 깊은 이해심을 동시에 '훌륭히' 담아낸 장근석의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 영화가 음악과 밴드, 그리고 그들의 연주를 묘사하는 방법도 만족스럽다. 예컨대 기영과 성욱과 혁수가 합주실에 다시 모인 첫날, 전혀 맞지 않는 박자들 속에서도 즐거운 표정의 충만함이라든가, 마치 『쉘 위 댄스』의 야쿠쇼 코지처럼 일상생활에서도 그 기분 좋은 설렘을 이어가는 장면들, 그리고 연주장면이 거듭될수록 실제 밴드같이 점차 연주력이 나아지는 섬세함을 포착한 부분들은, 『즐거운 인생』이 단지 40대의 현실과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충실한 것 뿐 아니라 그 매개가 되는 음악을 다루는 방식에도 많은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구나 따로 연습을 했음이 분명한 배우들의 연주장면이 너무도 실감나서 마지막 콘서트 장면에서는 정말 라이브 공연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또 편곡이 거듭되는 ‘활화산’의 노래들은 옛날의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새롭게 탈바꿈되어가는데, 『즐거운 인생』의 두 음악감독, 이병훈과 방준석이 각각 작곡한 “터질거야”와 “즐거운 인생”이 바로 그런 곡들. 너무나 솔직해서 속이 다 보이면서도 용케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주는 그런 노래들이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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