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여행 마지막 날: 뉴욕 카페, 부다페스트 국제공항 (2011-12-26)

전날 겔레르트 언덕에서 곧장 호텔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부다 지구 아래쪽까지는 버스를 타고 내려왔고, 거기서부터 다리 건너 페스트 지구까지는 걸어왔는데, 야경을 이대로 두고 바로 잠을 청하기는 아쉬워 강 건너 부다 왕궁이 뿜는 빛을 한 시간 남짓 감상했다. 내 보잘것없는 사진 실력으로 이 불빛을 담아내긴 역부족이었지만, 눈으로라도 더 봐둬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도나우 강변엔 추운 밤 바람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를 데리고 나온 시민들. 왁자지껄하게 젊음을 뽐내는 청년들. 나처럼 여행자의 것처럼 보이는 두툼한 백팩을 등뒤에 맨 채 왕궁을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왕궁 사진을 몇 장 찍어보다 초점도 맞지 않고 손도 차가워져 그만두고 주변 사람들을 구경했다.




부다 왕궁의 빛. 그것은 샛노란 황금색 같기도 하고 할로윈 축제에 등장하는 잭오랜턴이 뿜어내는 빛을 연상케도 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둘째 날의 기억은 그 빛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빛에 취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염없이 걷는데 사용했던 다리의 피곤에 의식이 결박 당해서였는지, 도나우 강변으로부터 호텔로 돌아와 잠들기까지의 기억은 희미해졌다. 아마도 숙소에 도착하여 어떠한 감각도 자각도 없이 적당히 씻고 급히 잠에 골아 떨어졌으리라. 간 밤의 깸도 없이, 꿈을 꿀 겨를도 없이 아침을 맞이하는 여행지에서의 잠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행복한 고됨으로 밤의 휴식이 달콤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창문을 여니 하늘이 흐렸다.

호텔조식을 먹지 않았다. 오후로 계획된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도심을 거닐 여유가 있었는데, 그 시간을 틈타 일찍이 가고자 마음 먹었던 뉴욕 카페(The New York Café)에 들러 아침을 해결할 셈이었다.




카페에 도착하니 개점 시간까지 한 시간여가 남아 있었다. 어중간한 시간을 때울 겸 트램을 타고 아무 목적 없이 부다 지구까지 갔다. 되돌아 오는 길에는 다리 중간의 공원에서 산책도 잠깐 했다. 그러다 카페 정문에 쓰여있던 오픈 시간에 맞춰 다시 돌아왔다.




나는 커피 종류에 따라 맛을 구분할 만큼 예민한 혀도 없고, 하루 세 끼 배를 채워야 하는 것처럼 하루 몇 차례 식도를 통과해야 하는 커피량이 정해진 커피 애호가도 아니다. 나라는 인간 그 자체는 커피숍과 친해질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나는 카페에 들어가 옆의 것과 격리된 나만의 테이블을 가지는 호사를 누리며, 쉬면서 주변을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군중 속의 익명으로 나에게 배정된 자리를 차지한 채, 주변의 간섭 없이 휴식을 취하는 그 순간을 좋아하는 것이다.




너무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인지 그 넓은 장소에 손님은 겨우 세 테이블을 채울 정도 뿐이었다. 어느 학회 일로 모인 노교수들처럼 보이는 초로의 사람들이 한 테이블, 30대 초반일 것 같은 커플이 한 테이블, 그리고 전혀 커피를 즐길 것같이 느껴지지 않는 검은색 점퍼 차림의 여행객 한 사람, 그러니까 내가 나머지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호텔조식을 건너뛴데다 계획에도 없던 트램 유람을 하고 온지라 배가 고파져 파스타 하나를 주문했다. 양은 적고 인문학을 즐길 것 같이 고상하게 생긴 파스타였다. 내가 좋아하는, 조리 과정 마지막에 오븐에 살짝 돌려 면이 말캉말캉하고 질겅질겅한 치즈를 듬뿍 얹어 느끼한, 어린이 입맛용 스파게티가 아니어서 처음엔 약간 실망했으나, 호텔조식도 건너 뛴 허기는 취향을 압도했다. 허겁지겁 해치울 만도 했지만, 파스타의 생긴 모양 그대로 우아하고도 천천히,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커피의 '피' 자 스펠링이 fee인지 pee인지 헷갈릴 법한, 커피 문외한인 나는 커피도 한 잔 시켰다. 제 맛을 몰라주고 무시당할 커피가 심심하지 않도록 쿠키도 같이 가져다 준 웨이터가 고마웠다. 쿠키를 맛있게 씹었고, 커피는 담담이 마셨다. 옆을 보니 나 포함 세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두 테이블이 더 찼다. 좀 더 앉아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할 일없이 뭉툭한 시간이 닳도록 하고 싶었지만, 아침부터 약간 부른 배가 불편해져 거리를 좀 걸으려고 카페를 나섰다.




카페 주변을 걸어 소화를 좀 시킨 후 지하철을 탔다. 부다페스트 국제공항(Budapest Ferenc Liszt International Airport)까지 가려면 지하철로 M3 Kőbánya-Kispest 역까지 간 후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파리까지는 저가항공사 항공편을 예매해두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유럽 내에는 이지젯(easyJet), 라이언에어(Ryanair) 등의 저가항공사들이 있었다. 이런 항공사들에서 판매하는 티켓을 시간 여유를 가지고 예매하거나 프로모션 기간에 구입할 경우, 매우 저렴한 가격에 유럽 전역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 장기 주재하는 직장인들, 유학생들이 부러워지는 지점이었다.




4열 짜리 좌석을 갖춘 소형 여객기에 기본 기내식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음식과 음료를 따로 주문할 수 있는 메뉴판이 각 좌석 앞에 끼워져 있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2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에 굳이 기내식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저가항공사 비행기를 이용해 보니 항공료를 낮추고 기내식을 없애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내식을 먹고 즐거웠던 기억은 아무리 찾아내려 해도 떠올려지지 않으니까.

비행기가 이륙했다. 내 좌석 앞에는 친구들로 보이는 네 명의 유럽청년들이 앉아있었다.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비행시간 내내 3초 이상의 침묵을 지키는 법이 없었다. 그 소란스러움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주어진 생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그들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그것은 내 것과 다른 형태의 젊음, 내가 가지지 못했던 활기참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비행시간이 길지 않아 그 시끌벅적함을 너무 오래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어느새 창 밖은 어두워졌고, 파리 오를리 공항(Paris Orly Airport, Aéroport de Paris-Orly)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착륙이다.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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