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체제가 전세계를 지배했던 1957년, 우주개발에 한 발 앞선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이 미국을 묘한 열등감에 빠지게 했던 바로 그때이다. 미국의 작은 마을 록웰에 미지의 비행물체가 추락한다. 그것은 강철로 된 거인. 이를 목격한 어부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우연히 이 말을 듣게 된 소년 호거스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 강철 거인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호거스는 외계로부터 찾아온 거대한 로봇을 만나게 되고 위기에 처한 그를 도와준다. 이것을 계기로 둘은 가까워진다. 한편 사고 현장에 파견된 정부요원 켄트 맨슬리는 처음엔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목격자의 증언에 의심을 품지만 곧 이것이 사실이라는 단서를 잡는다. 맨슬리는 이 괴물체가 미국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
영화는 전체 러닝타임의 처음 3분의 1을 이렇다 할 대사 없이 진행한다. 그나마 등장하는 대사는 월리(월-E)와 이브의 통성명 정도로 나머지는 모두 캐릭터의 몸짓과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의 기계음으로 묘사된다. 그 동안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 덩이가 되어버린 지구의 황량함이 월리를 쓰레기 더미 가운데 한 점으로 보이게 하는 부감시점과 묵시록에 어울릴만한 음악을 통해 드러난다. 생명체라곤 이 쓰레기 처리 로봇을 졸졸 따라다니는 바퀴벌레 한 마리뿐인 이 외로운 지역에 바로 월리의 아지트가 있다.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아이템들을 하나 둘 선반에 진열하는 모습은 로봇 월리를 흡사 희귀품을 수집하는 인간처럼 보이게 한다. 더구나 뮤지컬 속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에 감동하는 월리. 웬만한 인간보다 감상..
일개 관객으로서 3D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영화잡지나 관련 사이트 등을 통해 단편적인 지식을 접할 뿐으로, 관심 있는 부분이 아니어선지 그마저도 곧 잊히기 일쑤이다. 시리즈로 대변되는 초기 장편 작품들을 봤을 때 느꼈던 놀라움과 신기함, 에서 섬세하게 처리된 설리의 털 정도가 3D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애니메이션의 이 한 형태가 하나의 장르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후에는 당연히 여느 영화를 대할 때와 비슷하게 그 외형적인 매력보다는 안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에 더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전통적인 동화세상에 대해 발랄한 전복을 꾀했던 시리즈를 좋아했고 탄탄한 내러티브 속에 큰 웃음을 간직한 브래드 버드의 작품들을 재미있게 감상했..
평범한 초등학생 코이치의 엄마는 아들이 고이 모셔 가져온 이 이상한 물체를 보고 기겁을 한다. 징그럽다며 손사래를 친다. 깨진 바위틈에서 코이치가 뿌려주는 수돗물로 몸을 축이며 생기를 회복한 한 마리 괴생물체는 이렇게 긴 잠에서 깨어난다. 에도 시대에 태어나 지진으로 흙 속에 갇혀 긴 시간을 숨죽인 채 기다려온 갓파. 코이치는 나름대로 귀엽게 생긴 이 생명체에게 ‘쿠우’라는 이름을 붙인다. 쿠우는 생명의 은인 코이치, 갓파의 출현에 흥분해버린 아버지, 징그럽다면서도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먹이를 날라다 주는 엄마, 그리고 한창 귀여움을 독차지해야 할 나이에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르는 못생긴 요괴에게 자리를 빼앗겨 심통이 나버린 여동생 히토미 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이들 앞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
역시 화두는 이야기와 테크놀로지다. 때론 취향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부실한 이야기와 뛰어난 비주얼의 기묘한 비례관계를 너그러이 인정하는 관객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에 놀라곤 한다. 2시간 안팎의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 자체의 반짝임에 몰두할 것인지, 아니면 스크린에 펼쳐지는 문학적 서술에 주목할 것인지는 어차피 관객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이 둘이 보기 좋게 결합하기를 바라는 관객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사실엔 여전히 의문이다. 영화를 철저히 상업적 측면에서 바라보더라도, 내게는 그것이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긍정의 태도’로 여겨지기에 앞서, 보다 나은 상품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독 최근의 영화들 중에서 어느 한 요소, 특히 영화의 비주얼이나 테크놀로지에 집착하는 태..
우연히 만난다면 분홍빛의 말랑말랑한 코를 한번 만져 봐도 되는지 물어보고 싶은 레미(패튼 오스왈트)는 타고난 후각을 가진 쥐이자 천부적인 요리사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동료 쥐들이 발견한 음식 쓰레기들에 쥐약이 들어있는지 아닌지 감별하는 데 쓰일 뿐이다. 어느 날 이 조그만 녀석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 구스토에 숨어들어가 요리사의 꿈을 키운다. 물론 자신을 보고 기겁을 할 사람들에 대비해 링귀니(루 로마노)라는 청년을 앞세운 채. 요리에 소질이 없는 링귀니는 어머니의 유언에 의해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에 청소부로 들어가지만 레미의 도움을 받아 우연히 맛 좋은 스프를 만들게 되고, 죽은 구스토의 뒤를 이어 식당을 물려받으려 했던 수석 주방장 스키너는 여러모로 미심쩍은 그를 못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