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생긴 대로 당당하게 살아라!’가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슈렉 시리즈’의 기본 모토이긴 해도, 성인 관객들을 혹하게 만든 이 녹색 괴물의 매력을 설교조의 교훈에 묻히게 만드는 건 이 시리즈에 대한 기만이다. 적어도 머리 큰 팬들은 그런 고리타분한 메시지가 아니라, 낡은 것을 패러디하고 기대되는 것의 전복을 꾀하는 ‘슈렉’의 기발함에 더 집중할 테니까. 동화 속의 들러리들을 주인공을 위시한 주요 등장인물로 앉혀놓고 과거의 찬란했던 주인공들을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리는 그 발상의 전환. 그게 어른들이 이 ‘깜찍한’ 녹색 커플의 모험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러나 뭐든지 두어 번 뒤집고 나면 결국 눈앞에 있는 건 제자리로 돌아온 원본이다. 아니면 더 이상 뒤집을 구석이 남아 있지 ..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누구든 파스텔톤으로 포장된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쯤은 갖고 싶어 한다. 그것은 냉정하게 돌아볼 때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공통의 성장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더 뽀얗고, 더 희미하고, 더 아련하다. 누군가 그건 추억자체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어린(젊은) 자신으로 돌아가고픈 욕망이라 설명했다. 그런 인간의 심리를 그대로 투영한 『초속5센티미터』는 별다른 내러티브도, 눈에 띄는 캐릭터도 보이지 않는 낯선 애니메이션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멀어지게 된 다카키와 아카리의 사이에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초속5센티미터』에선 헤어진 행위 자체보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그리운 감정이 더 중요하다. 다카키와..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녁반찬을 걱정하던 엄마는 마침내 굳은 결심을 한 듯 팔을 걷어붙인다. 지난주와 그저께 모두 카레를 먹었는데, 오늘은 무얼 만드실까? “오늘이야말로... 카레로 한다!!” 입맛까지 다시면서 색다른 메뉴를 기다린 딸 노노코의 기대는 여지없이 사라진다. 아들 노보루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모처럼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고 싶었던 아빠는,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금세 긴장하여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내고 만다. 온가족이 함께 간 쇼핑몰에 노노코를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모두들 걱정하고 있을 때, 노노코는 정작 자신이 아닌 가족들이 미아가 되었다면서 태연자약하다. 음, 뭔가 느낌이 오질 않는다고? 그건 아마 나의 표현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일 게다. 아니..
지브리의 2006년작 『게드전기』는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의 ‘어스시(Earthsea)’ 연작 중 3권 “머나먼 바닷가”와 4권 “테하누”의 내용을 서로 연결해 각색한 작품이다. 지브리 미술관의 관장으로 재직하다 『게드전기』로 애니메이션계에 데뷔하는 감독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는 그의 아버지이자 지브리의 얼굴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어스시’의 세계를 마침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에 짙게 드리워진 어슐러 르 귄의 영향은, 영화평론가 이상용이『게드전기』의 개봉에 맞춰 필름2.0에 기고한 “지브리 시간 속 용의 전설: 『게드전기』와 미야자키, 어슐러 르 귄의 세계”(2006년 8월 8일자 필름2.0)라는 특집기사에 ..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일본, 도쿄인근의 타마(多摩)언덕. 이곳에서는 지금 인간들의 거주지역을 확장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이른바 ‘타마뉴타운’ 개발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지역의 원래 주인인 너구리들은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급기야 그들의 전통의 비기인 변신술을 이용해 인간과의 대결을 선포하는데... 다카하타 이사오의 너구리들은 결국 변신술을 꺼내들고야 말았다.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오토봇이나 디셉티콘의 변신도 그들 앞에서는 한낱 어린아이같은 재롱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은 물론이고 여우나 토끼같은 동물, 50인분의 밥이라도 안칠 수 있는 커다란 솥, 앙증맞은 불상, 다양한 요괴로도 변신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목격한다면 무시무시한 메가트론도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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