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정원에서 (스튜어트 리 앨런)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자연의 부산물들을 섭취한다. 잘 재배한 곡식, 과일은 물론, 죽인 후 익힌 동물의 육체에서부터 아직 숨이 붙어 팔딱거리는 물고기까지,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이른바 ‘음식’의 종류는 세계 각지의 기후와 풍습에 따라 천차만별, 수만 가지다. 재미있는 점은 오로지 본능에 지배당하는 동물과 달리 뇌를 다른 방면으로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인류가 음식에 맛이나 생존의 목적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음식과 그것을 이루는 재료의 또 다른 역사가 만들어진다. 스튜어트 리 앨런의 <악마의 정원에서>는 그것을 다룬다.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가 알려주듯, 저자는 인간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금기시해온 음식들의 사례를 하나 둘 밝히며 그것이 역사 안에서 가진 의미를 풀어낸다. 무언가를 금지하는 행위는 그 대상이 그 시대 지배자들이 바라는 사회존속의 형태를 위협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를 살펴보는 것은 시대를 조망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이 금지된 음식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재미있는데, 그는 금기를 깨려는 시도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욕구이며 그렇기 때문에 해당 음식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지게 되거나 때론 실제보다 더 맛있게 여겨진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못하게 하니까 더 하고 싶은 것이다.

 


책 <악마의 정원에서>의 구성은 단테의 <신곡>에 나와있는 7가지 죄악을 차용했다. 그에 따라 나뉜 각 챕터는 또 음식이나 재료의 구분에 의해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음식에 관한 문헌으로부터의 수많은 인용이나 직접 겪은 경험, 혹은 세계 각 지역에서 만난 현지인들과의 대화로부터 얻어낸 것들이 대부분이라 설득력을 더한다. 여기서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책의 일부분을 살짝 요약해본다.

 

 적의 음식은 먹을 수 없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구대륙(유럽)에 전해진 음식들이 있다. 초콜릿과 토마토, 또 옥수수 등이 그것인데, 유럽 상류층들이 즐겨 먹었던 토마토 같은 채소는 널리 사랑 받은 반면 옥수수는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음식에 포함된 영양 같은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이유에서였다. 중요한 것은 옥수수가 인디언들의 주요 식량이었다는 사실. 신대륙을 집어삼키기 위해 인디언을 압살하기 시작한 유럽인들은 그들의 적이 신성시하는 음식을 똑같이 대우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작업은 옥수수를 영양가도 없는 미천한 음식으로 만드는 것.

특정 집단을 와해시키고 그 전통의 맥을 끊어버리는 방법엔 그들의 문화를 폄훼하거나 말살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인디언으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을 접수한 미국인들은 그 이후에도 인디언들을 특정 구역에 몰아넣고 그들의 관습과 전통음식을 금지시켰다. 어떤 부족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해당 부족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미국식 식습관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긴 이와 비슷한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 일제시대를 겪은 우리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데.


 유대인은 돼지와 동의어?


이 책을 보면 서구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비유대인들의 거부감이 굉장히 오랫동안 이어져왔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수의 죽음을 둘러싼 기독교(인)와 유대교(인)의 반목을 그 유래로 삼고 있는 이 대립은 당연히 그들이 먹는 음식에까지 스며들어있다. 유대인을 돼지에 비유하며 경멸해 온 것은 매우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음식에 대한 규율이 엄격한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멀리 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설들이 비유대인들로부터 만들어졌다. 정도가 심한 경우 아예 유대인들을 돼지와 같이 취급하는 지역도 있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유대인을 돼지를 도살하는 방법과 똑 같은 방식으로 죽이는 것이나 로마의 부활절 전통 의식으로 못을 박아 넣은 통 속에 살아있는 유대인을 넣고 산 아래로 굴리던 풍습 등은 그들이 유럽 땅에서 처했던 위치를 가늠하게 해준다. 오래 전으로 돌아갈 것도 없이 세계대전 중에 희생당했던 유대인들은 나치 수용소에서 그야말로 돼지처럼 죽어갔다.

그러고 보면 역사의 진행이란 참 예측하기 힘든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과 그에 대한 미국의 지지로 알 수 있듯, 지금에 와서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 최강대국을 주름잡는 것이 유대인들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겪어왔던 사회적 박해를 그대로 주변국가에게 되갚아 주는 행태를 보고 있자면 더욱 그렇다.


 음식과 폭력성의 관계.


사람이 육식을 많이 할수록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간다는 설을 보편적 사실로 여기는 것은 우리 사회라고 그다지 다르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히틀러가 오히려 채식주의자로서의 삶을 추구하려 노력했다면 믿어질까. 단지 한 명뿐이어서 일반화가 어렵긴 해도 너무도 명백히 반대되는 사례가 아닌가. 육식과 폭력성향 간의 관계에 대한 설은 분분해서 이 책의 저자 자신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고 있진 않지만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유럽에선 이런 요리방법이 선호되었다고 한다. 연한 고기를 얻기 위해 짐승을 죽을 때까지 두들기거나(우리로서도 낯설지 않다. 나무에 매달린 채 마을 아저씨들에게 흠씬 맞았던 누렁이, 검둥이들.), 돼지의 살아있는 몸 안에 달군 철을 집어넣거나, 털 뽑은 거위를 산 채로 굽는 방법들. 특히 이 거위는 책에서 인용한 당시 요리책 문구들에 따르면 구워지는 동안 목말라 죽지 않도록 물을 제공받고, 곧 죽을 것 같은 행동을 보이면 불에서 내려져 잠시 휴식(?)을 취했으며, 손님들에 의해 조각조각 뜯기면서도 다 먹히기 직전까지 살아있어야 했다. 지금은 이런 음식들이 또 다른 금기가 되었지만 이것이 인간의 잔인성이 투여된 사례였음이 분명하고 또 죽음을 거쳐야만 우리에게 섭취되는 육류가 인간의 폭력성과 관계 있다고 여겨지게 되는 묘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으론 지금의 일부 유럽인들이 스스로 고결한 문명인처럼 여기며 타국의 식습관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자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책의 나머지 내용은 본문을 통해 더 자세히, 더 흥미롭게 접할 수 있다. 사실 <악마의 정원에서>는 학술적인 목적의 저서들 정도를 제외한다면 역사를 다루는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듯 여러 가지 설들을 혼합,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책 속엔 몇 가지 정보들을 바탕으로 저자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가설들도 있다. 그러나 서구문명의 생활 속에 금기된 음식에 얽힌 역사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부분들(이를 테면 음식을 지칭하는 이름이라든지, 아직까지 잔존하는 음식에 대한 그 당시의 관념들)을 살펴보다 보면 음식이 굉장히 복잡한 상징성을 띤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피 터지는 반목을 지속하는 종교와 맞물리거나 서로 다른 인종 사이에서 그 배타적인 구분점으로 작용하거나, 혹은 같은 사회 안에서도 계급을 나누는 기준점으로도 만들어지면서 단순히 먹고 소화되어 인체의 에너지가 되는 것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다.



책을 다 읽자 밤이 깊었다. 음식을 다룬 책을 읽어서인지 배가 출출해졌다(책의 내용으로 보자면 식욕을 느끼는 게 좀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야밤에 먹을 거라곤 며칠 전 사다 놓고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 약간과 새로 출시되어서 아직 맛을 보기 전인 컵라면 하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익을 때까지 기다릴 동안 몇 가지 맛이 섞인 아이스크림을 뒤섞어본다. 머리 깊숙한 곳까지 얼얼하게 단맛을 전하는 이 기묘한 음식은 과연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시간이 지나 녹으면 그 본래의 장점을 잃어버리는 이 찰나의 쾌락. 3분이 지나 컵라면의 뚜껑을 벗긴다. 일일권장섭취량을 육박하는 양의 화학조미료와 염분으로 맛을 내놓고 그 따뜻해 보이는 외양으로 먹는 이를 유혹하는 이 간편하고도 불량한 음식은 누가 생각해낸 것일까? 이 두 가지 음식에도 매혹과 금기의 이야기가 서려 있을까(아니면 서리게 될까). 만약 그렇다면 웰빙과 날씬함을 동의어로 삼고 수많은 섭식장애자들을 양산하는 지금의 식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형태로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 혹시 두 세대 정도 후 이들이 모두 금지된 음식의 리스트에 오를지도 모르니까. 음, <악마의 정원에서>를 읽은 후유증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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