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한 만찬 (피에르 베일)



요사이 대형 할인마트의 식품코너에 가보면 그럴듯한 문구나 수식어로 포장된 제품들이 눈에 자주 띈다. 이를테면 특정 영양성분을 더한 음료수, 콜레스테롤이 함유되지 않았다는 과자, 염분만 줄이고 맛은 그대로라는 가공식품 등, 이런 제품들은 지금의 소비자들이 먹을 거리를 고를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각종 암, 심장질환, 비만과 당뇨 등 20세기 이후 급속도로 확산되는 이러한 질병으로 현대인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진열되어 있는 식품들의 포장지에서 ‘건강’을 상징하는 문구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건강을 고려하는 식품들이 그리 많고 또 그것이 모두 소비자의 수요로 인해 만들어진 것인데도 왜 이른바 ‘현대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것일까. 피에르 베일의 <빈곤한 만찬>을 읽어보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해답의 일부를 알아낼 수 있다. 환경, 먹을 거리, 인간의 활동, 그리고 제약회사와 식품업계 등 우리의 건강상태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많이 있다. <빈곤한 만찬>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비만이다. 다양한 분야가 맞물린 상태인 만큼 현대인의 대표적인 ‘질병’으로 낙인 찍힌 비만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다. <빈곤한 만찬>은 모든 원인을 조망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그 중 몇 가지에 집중하여 주장을 전개한다.

 


매해 우리의 허리둘레를 늘리는 것은 과거에 비해 줄어든 활동량과 늘어난 식품섭취량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조사에 따르면 20세기 후반부터 현대인이 섭취하는 열량은 해마다 줄고 있다고 한다. 또 운동부족이 비만을 비롯한 위험한 질병들의 원인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편해지려는 인간의 게으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한편 시중에 널린 냉동식품과 패스트푸드만을 새삼 탓하기 전에 누군가가 어떤 이유로 특정 정보를 널리 알리지 않은 탓에 변화를 꾀하기 힘든 면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한다. 농수산물 가공업체나 제약회사, 식품업계가 정보를 쥐고 그것을 이윤만을 목적으로 사용할 때 소비자들이 당해낼 재간은 없다.

<빈곤한 만찬>의 기본적인 요지는 이렇다. 인간의 유전자는 저 먼 옛날로부터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환경은, 특히 20세기에 이르러 엄청난 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몸은 예전방식을 기억해 가능한 그때 그대로 신체를 유지하려 하지만 우리가 먹는 것들은 너무나 달라졌다. 이를테면 추위를 대비하거나 만약의 사태에 준비하기 위해 몸이 지방을 축적하는 방법은 변한 게 없는 반면 우리의 식생활은 소비자의 편리함과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크게 바뀌었다. 낮은 단가에 대한 집착과 대량생산의 활성화는 주변자연으로부터 음식을 얻어온 인류의 예전 습관과 상반된다. 그리고 이런 생산방식의 변화는 잘못된 주장마저도 과학적인 정설로 탈바꿈시킬 정도가 되었다.

이 책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은 ‘콜레스테롤’과 ‘오메가 6’, 그리고 ‘오메가 3’이다. 요즘에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익숙한 어휘들이 되었지만 그 기능들마저 그렇게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빈곤한 만찬>에 따르면 콜레스테롤은 식품업계와 제약회사에 의해 크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 마치 이것의 혈중 수치가 현대병의 모든 것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콜레스테롤을 대체하기 위한 시도들, 즉 동물성 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식물성 기름을 이용하는 것이나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기 위해 인위적인 약품사용을 권장하는 것 등은 심장혈관계열 질환을 예방하는데 상상했던 것만큼 큰 효과가 없었다. 버터를 마가린으로 바꾸면서 사람들의 포화지방산 섭취는 오히려 더욱 증가했으며 콜레스테롤 관련 약품산업은 건강에 해가 없는 일반적인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그 마케팅 범위를 확장했다. 결과적으로 관련산업과 언론에 의해 스타(?)가 된 콜레스테롤이라는 단어가 인류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결과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저자인 피에르 베일은 그 대신에 ‘오메가 6’와 ‘오메가 3’를 강조한다. 하나는 우리 몸이 지방을 축적하는데 쓰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의 작용을 돕는다는 이 두 가지 요소는 우리 혈관 안에서 일정한 비율을 유지할 때에 비로소 건강한 신체의 조건을 마련한다. 그런데 오늘날 그 이상적인 비율이 붕괴되었다. 오메가 6가 오메가 3에 비해 많이 섭취되면서 비만을 촉진하는 것이다. <빈곤한 만찬>은 그것이 우리의 식습관 때문이 아니라 그 먹이사슬의 아래에 있는 동물들이 주로 먹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른 것이라 말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길러지지 않고 대형사육장에서 움직임을 제한당한 채, 옥수수와 콩으로 만들어진 값싼 사료를 먹고 자란 소나 돼지들은 오메가 6의 비율이 오메가 3에 비해 굉장히 높다고 한다. 왜냐하면 옥수수나 콩 안에 함유된 오메가 6와 오메가 3의 비율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육된 가축을 먹는 인간의 혈관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벌어진다.

책의 전반부에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가 지루하게 펼쳐지는 듯 했던 <빈곤한 만찬>은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정작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낸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공포(?)로 식물성 지방의 생산과 수요가 늘었지만 그것은 도리어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고 트랜스지방산이라는 새로운 위협요소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책을 통해 오메가 6와 오메가 3 비율의 중요성을 시종일관 설파하던 피에르 베일은 정치나 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인류의 건강이 좌지우지되지 않으려면 올바른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이루어져야 하고 미봉책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내놓는 해결책은 기존의 식단을 크게 바꿀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미각을 해치지도 않고 환경과도 공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실행되는 것들이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먹이사슬의 아래쪽에 두고 우리가 섭취하는 식품들이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길러지는지를 살펴본다. 그렇게 한다면 굳이 치즈가 들어있지 않은 치즈, 우유성분이 전혀 없는 요거트를 먹기 위해 고역을 치를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바람직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식품은 우리의 몸에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 단 쇠고기보다도 많은 포화지방이 함유된 과자를 여전히 입에 달고 살거나 재미있는 TV의 유혹에 이끌려 운동을 멀리하는 잘못된 생활습관쯤은 개개인의 의지로 개선해줄 것을 저자는 잊지 않고 당부한다.

상식으로 통용되던 기존의 생각을 뒤엎고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빈곤한 만찬>같은 책을 읽는 재미는 의외로 쏠쏠하다. 다만 과학자 혹은 관련산업 종사자가 아닌 일개 독자나 소비자로서 이렇게 새로 주어진 정보를 얼마만큼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지나친 우려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듯이 왜곡된 정보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정보의 순환이 언제 다시 뒤바뀔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 앞에 놓인 정보로부터 일정의 거리를 두는 태도 또한 잊어서는 안되겠다. 결국 모든 부정적인 결과는 의심 없는 맹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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