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공교롭게도 근 두 달 사이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엔 글쓰기를 다룬 책이 세 권이나 된다.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영화 리뷰 쓰기>, <만화보다 쉽고 재미있는 만화 리뷰 쓰기>,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가 그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구입해 여전히 책장에서 읽을 이를 기다리고 있는 몇 권(국어 맞춤법을 다룬 책과 여타 실용적인 목적의 글쓰기 책 등)을 더한다면 마치 내가 글쓰기 강좌를 수강하고 있는 한 명의 착실한 학생처럼 느껴질 정도다.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글쓰기를 위한 조언은 앞에 언급한 세 권의 책으로 충분히 얻었다고 믿는다. 세 권의 책이 각기 다른 글쓰기 분야를 다루는 점에서도 그렇고 취미생활의 일환으로서의 글쓰기라면 이 정도 선에서 도움말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기에 더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까지 읽은 것은 언제나 그렇듯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닌 내 머리 속 어느 곳이 부추긴 충동의 결과라는 얘기다. 굳이 앞의 책들에 이어 이 책을 본 장단점을 따지자면 직업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 그래서 기억해두면 언젠가는 쓸모를 발휘할 요점들을 일목요연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좋고, 한가지 주제로만 된 책을 너무 오랫동안 읽을 때 만나게 되는 동어반복을 이겨내야 한다는 측면에서 좋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을 한 독자의 책임일 뿐 스티븐 킹의 잘못은 아니다.

 


아울러 <유혹하는 글쓰기>는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스토리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 낼 줄 아는 저자의 능력이 이런 실용적인 책을 통해서라고 발휘되지 않을 리는 없으니까.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저자의 글쓰기 인생을 압축해놓은 ‘이력서’, 글을 쓰기 전에 미리 준비해놓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연장통’, 자신의 경험과 여타 작가들의 예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창작의 과정을 펼쳐놓는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를 집필하는 도중 입었던 교통사고가 그의 삶과 글을 쓰는 여정에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기술되어 있는 ‘인생론’이 그것이다.

이제서야 고백하건대 스티븐 킹의 책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 그의 저작들이 순수문학이 아니라거나 읽은 후에 남는 것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편견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마주할 기회가 없었을 뿐. 그래서 이 책의 ‘이력서’ 부분은 새삼 그의 책과 나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첫 단계로 황금가지에서 나온 <스티븐 킹 단편집>을 구입했다).

스티븐 킹이 직접 말하는 자신의 글쓰기 인생에 그리 특별한 것은 없다. 작가를 꿈꾸는 대다수의 예비 작가들이 예상대로 거칠 그런 어린 시절이지만, 그렇기에 그것조차도 유머를 섞어가며 재미있게 펼쳐내는 스티븐 킹의 글 솜씨가 더욱 돋보인다. 그의 표현은 쉽고 간결하며 비유도 머리를 두 세 바퀴 굴리기 전에 그 본심이 느껴질 만큼 친절하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그 핵심을 꿰뚫는 비유법이다. 때론 어떤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표현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나는 항상 그것이 소양이 부족한 내 탓이려니 하고 생각해왔다. 스티븐 킹의 글을 읽은 지금에 와선 굳이 그런 자학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모르는 것을 터득해나가려는 자세도 중요하겠지만 정작 글쓴이도 이해 못할 표현을 독자가 이해해내려 애 쓸 까닭도 없는 게 아닐까.

‘연장통’에 들어서면 드디어 글쓰기를 위한 실질적인 조언들을 만날 수 있다. 스티븐 킹이 글쓰기 전에 준비해 둬야 할 것으로 강조하는 것은 낱말과 문법, 그리고 문체다. 글을 쓸 때엔 풍부하고도 적절한 어휘를 갖추고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문법을 사용한다. 그 다음은 문체. 스티븐 킹은 쓸데없는 곁가지들을 과감히 처내는 간결함을 중요시 한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에서와 마찬가지로 결국 독자와의 연결점을 찾아야 하는 저작행위가 산만한 겉모양으로 그 초점을 흐트러뜨리는 것보다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전달하는 간결한 외모를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이 두 창작개론 선생님들의 지향점이 같다. 물론 경우에 따라 의식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진 문체, 또는 부사(스티븐 킹은 부사를 남용하지 말라 당부한다)를 많이 사용한 문체가 필요할 수는 있지만, 우선 나부터 그런 외모의 글들에 다가가길 꺼린다. 스스로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선호하기 때문에 안정효나 스티븐 킹의 조언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아직 요원한 일이라고 믿지만 <유혹하는 글쓰기>의 ‘창작론’을 들여다보면 문득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기도 한다. 소설이든 가상에 가까운 산문이든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 일일까 상상도 해보면서.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것은 글쓰기 향상의 유일한 지름길인 듯하다. 스티븐 킹도 그렇게 말한다. 하긴 자전거나 자동차도 백날 뒷자리나 조수석에 앉아 페달을 밟는 앞사람을 안거나 운전하는 옆 사람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운전솜씨가 늘어나길 바랄 수는 없는 노릇. 남의 글을 읽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글을 써보는 것이 창작을 위한 궁극적인 도움말일 것이다. ‘창작론’ 챕터에서는 이 밖에도 적절한 묘사의 구사, 좋은 대화문의 조건, 그리고 진실된 이야기를 하는 태도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마지막 ‘인생론’에서 독자는 <유혹하는 글쓰기>가 하마터면 미완성이 될 뻔했을 사실을 접한다. 스티븐 킹은 이 책을 쓰는 도중 그가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할 만큼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다. 아찔한 사건이지만 사고의 경위를 서술하는 어투에서도 잘 나가는 소설작가의 직업병(?)이 그대로 묻어난다. 어쨌든 작가는 이 사고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 창작이 차지하는 비중을 다시금 느낀 것 같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스티븐 킹의 말이다. 시종일관 유연하면서도 직설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던 저자의 말 치고는 매우 감상적이지만 그가 들려주는 작가의 삶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나도 저 세계에 진입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된다. <유혹하는 글쓰기>의 내용은 그 유용성을 떠나(사실 글쓰기에 대한 조언은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만큼 진실해 보인다. 나는 스티븐 킹의 세계에도 한걸음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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