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탄생 : 울버린 / X-Men Origins : Wolverine (2009)

<엑스맨> 1편에서 덩치만 크고 머리 쓸 줄 모르는 멍청한 캐릭터로 전락했던 세이버투스(리브 슈라이버)가 울버린(휴 잭맨)과 애증이 섞인 라이벌이 되어 돌아왔다. 영화는 시리즈 2편에 등장했던 스트라이커 대령을 극의 대척점에 놓고 또 하나의 인기 캐릭터 사이클롭스마저 간간이 등장시키며 자신이 이전 시리즈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 완전히 새로운 얘기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이내 영화는 인간의 육체와 CGI가 충돌하는 격전의 무대가 된다. 울버린의 아다만티움 손등뼈는 기존 시리즈에서의 그것에 비해 더욱 크고 빛나며 단단해 보인다. 개빈 후드는 이 성공적인 시리즈의 외전을 쉬지 않고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해내는 짐승들의 근육질 액션 판타지로 그려냈다.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 크고, 빠르고, 강한 남성들의 액션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


개빈 후드의 돌연변이들에겐 한가롭게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여유 따윈 없다. 자신들의 특수능력을 스크린 안에서 얼마나 화려하게 펼쳐낼 지가 그들의 유일한 근심거리다.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이하 <울버린>)은 판타지 속 초능력자들로 ‘다름’을 ‘틀림’의 시선으로 감수해내야만 하는 현실 속 소수자들을 은유 했던 브라이언 싱어의 그 세계와 한참을 떨어져 있다.

 


한마디로 <울버린>은 돌연변이들을 액션의 소용돌이에 던져 넣음으로써 2시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을 훌쩍 지나가게 만들어 버린다. 보는 이는 캐릭터 하나하나에게 부여된 서로 다른 신기한 능력을 흥미롭게 감상하거나, 지구의 물리법칙을 역행하는 그들의 가공할 파괴력을 신나게 즐기면 된다. 마치 자신이 하나의 격투게임 안에 들어선 것처럼.


이미 이 돌연변이 세계로부터 멀리 떠나버린 브라이언 싱어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 팬이라면 <울버린>처럼 허망한 영화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엑스맨> 시리즈에 포함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원 시리즈에서 사유의 무게를 빼버린 <울버린>은 단순하거나 솔직한 블록버스터다. 텅 빈 머리 대신 근육 사이 핏줄을 드러낸 팔뚝이 전면에 나서는 영화다. 액션은 시원시원하고 충분히 즐길 만 하다. 러닝타임 동안만이라도 복잡한 세상을 잊고 싶다면 <울버린>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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