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고 고뇌하는 스파이의 개과천선 이야기 『본 아이덴티티』는 표면상으론 국가의 이익에 매몰된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주인공을 묘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깨닫지 못한 수퍼히어로의 자각을 다룬 영화 같기도 하다. 주인공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망각의 어둠속을 헤매면서도 이미 몸으로 체득해버린 놀라운 능력들을 자신도 모르는 새에 하나 둘 꺼내놓는다. 영화 초반 제이슨 본이 스위스에 도착한 후 공원에서 순찰중인 경찰들을 만났을 때, 비로소 그의 첫 번째 능력이 발휘되는데, 그는 곧 1대 다수의 격투에도 능하고 다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매사에 주도면밀한 것으로 밝혀진다. 영화가 그 모든 것을 조금씩 보여주는 방식은 마치 빨간 복장 이전의 피터 파커가 스스로의 능력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과 비..
나에게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두 번 씩 강요하는 영화들은 많지 않았다. 침침한 기억을 두서없이 더듬어보자면, 장 피에르 주네의 『에이리언4/Alien:Resurrection』와 김지운의 『장화, 홍련』이 그랬고,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花火』와 박찬욱의 『올드보이』가 그랬다. 그러고 보니 최근의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최동훈의 『타짜』를 제외한다면. 혹자는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라 말하는 ‘극장에서 같은 영화 두 번 보기’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어둠속의 환상을 그 모습 그대로 조금이나마 더 오래 간직하고자 하는 욕심일 것이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제, 회고전 등의 특수한 상황이 아닐 경우 개봉 후 단 한 차례만의 상영기간을 가질 뿐이고, 이것은 좋은 추억을 그저 흘러가게 놔두는 것과 마찬가..
『오션스 트웰브』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테스의 명연기(!)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편보다 뒤떨어지는 영화의 분위기를 이 코미디 한방으로 만회하려는 것 같은 느낌에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테스와 브루스 윌리스가 펼치는 한바탕 코미디쇼는 그자체로 즐겁긴 했지만, 마치 이 대목에 모든 것을 걸어버리고 도망가는(?) 제작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인 『오션스 13』은 그런 과거를 반성하듯 아예 1편의 방식으로 회귀한 영화다. 대립각을 세우는 적의 존재도 『오션스 일레븐』과 흡사하고, 2편에 비해 쓸데없는 수다도 조금 줄었으며, 무엇보다도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듯 1편의 엔딩을 그대로 답습하며 끝을 맺는다. 한동안 개개인의 삶에 충실하던 오션과 친구들은..
록밴드 ‘스틸 드래곤(Steel Dragon)’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들의 음악은 물론, 몸짓 하나까지도 똑같이 카피하려는 주인공 이지(마크 월버그)는 타인의 삶을 쫓는 청년이다. 자신이 보컬로 있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에게 ‘스틸 드래곤’의 기타리스트가 연주하는 피킹 하모닉스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초반부에서부터 이지의 정신세계가 어떤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스틸 드래곤’뿐이다. 그러다 진짜 원조밴드의 부르심을 받게 된 이지. 언뜻 행복한 결말 같지만, 이때부터 이지의 내면에 갈등이 싹튼다. 자, ‘워너비’ 감성의 주인공이 영화의 말미에 무엇을 얻게 될지는 분명하다. 결국 이지는 신기루 같은 자신의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시리즈물의 후속작들은 항상 전편과 비교당하는 핸디캡을 안고 출발한다. 더구나 그 전편이 꽤 훌륭할 경우엔 속편들은 작품자체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당한 대우마저도 감수해야 한다. 속편의 숙명과도 같은 이 냉정한 평가는 완벽한 팀웍으로 완전범죄를 꿈꾸는 오션 일당이라고 해도 피해갈 수 없다. 유쾌한 도둑질이라는 기본 소재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더 재밌게 만들기가 어려운 일이란 것쯤은 일개 관객이라 해도 짐작 하고 있다. 기껏해야 동어반복이라는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는 『오션스 트웰브』는 그래서 캐릭터들의 수다는 더 늘어나고, 코미디는 더 황당해지고, 범죄는 더 엉망이 되어가는 영화가 되었다. 오션 일당이 어떤 범행을 해도 신기해하지 않을 관객들을 위해 여러 잔가지들을 더 키운 격이랄까?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언젠가 라디오 게스트로 나온 노브레인의 이성우는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이 출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이었는데, 그것은 “이준익 감독님은 펑크(Punk)를 훵크(Funk)로 부르시는 것만 빼면 다 좋다”는 식의 장난 섞인 말이었다. 그것이 이준익 감독의 장르의 구분에 대한 혼동인지, 단순한 발음상의 습관을 의미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이성우의 이 장난스런 말이 우습게도 『즐거운 인생』을 향한 나의 ‘오해’를 불러왔음을 인정해야겠다. 음악장르를 헷갈리는 감독이 만드는 밴드영화라면 그 영화의 결과가 어떨지 뻔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오, 이런 건방진 오만. 그것이 지금에 와서 왜 ‘오해’라 불리고 나의 태도가 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