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표현보다 ‘끼적댄다’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전자가 말 그대로의 뜻이라면 후자는 ‘글씨를 아무렇게나 갈겨 쓰는 모양’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자신의 행위를 조금 낮춰 일컫는 느낌을 준다. 두 단어를 굳이 구별해 쓰는 이유는 내가 이 장소에 남기는 글들이 직업적 투철함이나 견고한 사명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취미의 일환으로 쓰여지는 것이며, 그래서 그 결과물이 완성도의 편차를 보이더라도 무겁게 고민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하자는 일종의 사전 방어막을 쳐놓기 위해서이다. 부담 갖지 말고 마음을 편히 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만큼 가벼운 글을 ‘끼적대’지 않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없지는 않다. 그때가 올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문자를 배열하고..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그 느낌을 간직하려고 이 작은 공간에 뭔가를 끼적거리는 순간엔 항상 자신의 고갈된 상상력과 마주하곤 한다. 내가 쓰는 글은 기본적으로 단 두 종류의 술어, 즉 ‘재미있다’, ‘재미없다’로부터 출발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좀 더 길게 늘려 쓰는 과정에서 영화가 재미있는 원인을 찾아보거나 또는 지루했던 까닭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영화가 던져주는 소재의 상이함은 달라도 거의 모든 글이 비슷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이러이러해 좋았더라.’ 혹은 ‘그리하여 나빴더라.’ 상상력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좀 더 색다른 글, 영화에 대한 좋고 싫음의 주관적 판단 외에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끄집어 내는 글을 써보고 싶지만 언제나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같은..
얼마 전에 읽었던 와 비슷한 책이다. 책의 내용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받는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장 지글러가 기아를 발생시키는 원인과 그 해결책을 알기 쉬운 어조로 말하는 것처럼 의 저자 스탠 콕스도 환경문제를 야기시키는 수많은 원인들을 열거하고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두 저자가 다루는 문제들이 자본주의라는 세계경제 틀 안에선 상당히 해결하기 어려운 것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도, 책을 읽은 후 개별적인 독자가 궁극적인 해결책에 접근하기 어려운 무력감에 빠진다는 측면에서도 두 책은 비슷하다. 은 얼핏 환경문제만 다루는 것 같지만 그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저작은 자본주의의 실질적 지배자인 거대한 자본권력이 환경과 하위계급을..
식당에 가면 과식의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편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핀잔을 준다. 그 핀잔의 내용은 음식을 조금 남기는 편이 먹을 것에 대한 초연한 태도를 드러내 먹는 이의 사회적 지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농담 섞인 것에서부터 이런 행동이 제어되지 않는 습관이 될 경우 맞을 수 있는 내 건강상의 문제에 대한 걱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항상 음식을 다 먹으려 하지 말고 적당히 조절하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게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어린 시절 먹을 것에 대한 집착과 남겨진 음식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작된 이 행위가 우려했던 대로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나의 이런 행동이 저 멀리 아프리카 남부 어느 스러..
책을 다 읽고 역자후기를 본다. 유독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글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을 ‘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 있는 사람들’로 여긴다고 한다. 이 문장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이유는 명백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은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진 나 같은 독자에게 결코 친절한 저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만큼 글마다의 편차는 있지만 몇몇 글은 신학과 철학과 문학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낸 그 모든 지적 축적물의 얼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책의 제1부에 해당하는 부분은 작가의 일상과 다양한 경험을 유머와 풍자와 패러디로 포장해 읽기 쉽게 진행된다. 물론 이 안에도 작가 특유의 수많은 ..
그렇지 않았던 소년은 드물겠으나 만화는 어릴 때부터 참 좋아했다. 지금은 잘 읽지 않지만 나이가 먹어서 때문은 아니고 뭐든지 결말이 나지 않으면 읽기 꺼려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TV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다음 회, 다음 권을 기다리기는 너무 애가 타니까. 요즘엔 종결된 만화는 또 너무 길어서 읽을 엄두를 못 낸다. 아무튼 이렇게 점점 멀어지나 보다. 는 실은 와 함께 구입한 책이다. 본래 서평에 관한 책을 찾고 있었는데 랜덤하우스에서 나온 ‘세상 모든 글쓰기’ 시리즈에는 그런 책이 없었다. 대신에 이 책을 선택했다. 저자의 이름이 낯이 익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읽은 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의 주인이다. 예전에 읽었던 저자의 글에서 느낄 수 있었듯 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