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블로그 카테고리 제목으로 ‘영화리뷰’, ‘책리뷰’ 등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한동안 블로그를 방치해두고 다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카테고리 제목을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등으로 바꾼 것이다. 그건 ‘리뷰’라는 단어가 주는 다소 딱딱한 느낌 때문이었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잡담’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자유로워 보였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는 곧 블로그를 부담 없이 운영하겠다는 의미다. 이 행위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직업이 아닐 바에야 부담은 곧 흥미의 반감을 가져올 테고 블로그의 지속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쓰는 글이 좋을 리 없고 또 솔직할 리 없다. 카테고리 명칭의 변경은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의 첫 단계였다. 그것이 바뀐다고 그 내용 자체가 변할 리..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자연의 부산물들을 섭취한다. 잘 재배한 곡식, 과일은 물론, 죽인 후 익힌 동물의 육체에서부터 아직 숨이 붙어 팔딱거리는 물고기까지,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이른바 ‘음식’의 종류는 세계 각지의 기후와 풍습에 따라 천차만별, 수만 가지다. 재미있는 점은 오로지 본능에 지배당하는 동물과 달리 뇌를 다른 방면으로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인류가 음식에 맛이나 생존의 목적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음식과 그것을 이루는 재료의 또 다른 역사가 만들어진다. 스튜어트 리 앨런의 는 그것을 다룬다.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가 알려주듯, 저자는 인간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금기시해온 음식들의 사례를..
제목만 보고는 사진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설령 글이 있더라도 페이지 안에서 사진의 비율이 훨씬 높은. 생각보다 사진이 그다지 많이 수록되진 않은 ()는 수필집이다. 이 책의 제목은 소설가인 저자가 일상의 한 부분을 글로 포착하는 행위를 카메라가 대상을 담아내는 것에 빗댄 것이다. 물론 지은이가 직접 찍은 것, 혹은 그렇지 않은 이미지 등, 사진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농담하는 카메라’란 진짜 농담을 하는 어떤 놀라운 기계가 아니라 저자 자신을 가리킨다. 잠시 다른 얘기지만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뭔가 선수를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블로그를 몇 달간 방치해두었다가 다시 끼적대기 시작할 때쯤 내 머리를 스친 것이 바로 블로깅이 사진 찍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첫머..
를 읽다 보면 ‘재’와 ‘잿빛’이라는 단어가 높은 빈도로 등장한다. 남자와 소년이 걷는 길은 온통 재로 뒤덮여 있고 물에 떠있는 것도, 바람에 날리는 것도 재, 멀리 보이는 건물들의 외양을 묘사할 수 있는 색깔도 오로지 잿빛뿐이다.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아도 독자는 이 세계가 무언가 거대한 사건이 한 차례 휩쓸고 간 폐허와 동의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이 무채색의 공간에서 남자와 소년은 무엇을 위한 생존인지도 모른 채 해변을 찾아 떠난다. 남자는 사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를 죽음으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것은 오로지 소년뿐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세계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과거 이곳에서 인간들이 살았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발길을 옮기는 거리마다 말라 비틀어진 뼈들..
서로 다른 감독들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나 같은 이런 테마소설집들의 장점은 각기 다른 개성들이 모여있는 만큼 그 다양성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작가들간을 비교하거나 그들에 대한 감상자로서의 호부를 피해갈 수 없기도 하다. 여러 작품을 읽으며 느끼는 좋고 나쁨의 차이. 어떤 것은 버려지고 어떤 것은 선택되는 취사선택의 유혹. 말하자면 이런 형식의 결과물들을 감상하는 것은 많은 창작자들 가운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도 동시에 거리를 둘 대상을 솎아내는 과정도 동반한다. 에는 모두 9명의 작가들이 써낸 짧은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나이를 가리키는 ‘서른’이라는 숫자를 소재로 탄생된 단편들이다. 각 소설들은 이 소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각기 달라서 어떤 ..
요즘 보면 댓글이벤트라는 게 있다. 어떤 상품의 광고페이지나 리뷰글 하단에 불특정 다수가 간단한 글을 남기면 무작위로 추첨하여 해당 상품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추첨 상황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투명성을 얼마나 보장할지는 업계관계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모른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인지 아무 글이나 남겨도 되는 이 댓글란에는 해당 상품에 대한 섣부른 기대감, 혹은 더 나아가 써보지도 않고 펼쳐지는 칭찬의 말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고백하건대 나 또한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으며 가슴 속에서 전혀 우러나오지 않는 호감의 문구들로 채웠기 때문인지 당첨도 된 적이 있다. 지금도 수많은 사이트 어딘가에선 그럴듯한 미끼를 내밀고 미래의 소비자들이 해당 상품에 대한 좋은 문구 하나쯤 써주길 유혹하는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