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 일단 원작을 각색한 데에 따른, 소설 의 팬들의 적개심(?)은 내 감상의 영역이 아니다. 어차피 나는 원작을 읽지 못했고, 앞으로도 읽을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따라서 영화 가 얼마나 원작을 훼손(과연 이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했느냐와,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이 어떠하다는 설명 사이에는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세간에는 이 영화를 두고 (당연히!) 여러 평가들이 오고 가지만,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내 감상은 온전히 영화 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밝혀두고 싶다. 하긴 누가 상관하겠냐마는. 전작인 을 ‘유래 없이 대자본이 투입된 금연 캠페인’ 영화로 완성해버린 프란시스 로렌스라면, 그의 차기작이자 윌 스미스를 원톱으로 내세운 가 어떤 모양으로 만..
전작인 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누가 뭐래도 뉴스 생방송 중 앵커 에반(스티브 카렐)이 펼치던 원맨쇼였다. 분명 의 주인공은 브루스(짐 캐리)였고, 그가 보여준 능청과 익살이 영화 전체를 잘 이끌어나가긴 했지만, 이 한편의 코미디 영화가 우리의 뇌에 각인해준 이미지 중 에반의 몫이 적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영화 이후로 연일 승승장구하는 배우 스티브 카렐의 현재를 입증하듯 의 속편엔 브루스가 등장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의 전지전능한 힘에 농락당했던 에반이 주인공이 되어 돌아왔다. 과연 그 한 장면의 효과가 크긴 컸나 보다. 그러나 에서 제목 그대로 놀라운 힘을 얻게 된 브루스, 그래서 스프를 홍해처럼 갈라보기도 하고, 교통체증을 일시에 해소하거나, 잘 빠진 옷을 아무 힘도 안들이고 자신의 몸에 ..
1979년 10월, 어느 의대의 노교수(전무송)가 1941년의 뇌수술 장면을 보여주며 강의를 하고 있다. 교수의 모습은 나이 탓인지 어딘가 초췌해 보인다. 교수는 하나뿐인 딸과 저녁을 약속한 후, 옛날 자신이 근무했으나 지금은 폐허가 된 병원건물을 찾는다. 교수는 그곳에서 자신의 좋지 않은 과거를 직접 마주하듯, 조금은 긴장된 모습이다. 때는 저녁, 딸과 식사를 하는 노교수. 하지만 분명 아버지와 딸 두 명뿐인 이 집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이 저녁식사가 딸과의 마지막 만남이 된다. 교수의 두 아내가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명을 달리한 데 이어 이제는 딸과도 이별이다. 교수는 그 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37년 전의 과거를 떠올린다. 스스로 인과관계를 설명할 순 없지만, 자신의 ..
때론 내가 감상하고 있는 영화가 나에게 건네주는 끈들을 영원히 부여잡고 싶을 때가 있다. 이것은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와 나 자신간의 일대 일의 대화이며, 내가 스스로 그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영화라는 대상과 관객이라는 주체, 혹은 그 반대의 경계가 사라지는 ‘몰아(沒我)’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나는 그런 경험을 안겨주는 영화들에 있어서 그 끝을 만나고 싶지 않지만, 영화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엔딩 크레딧을 보여줘야 한다. 이 아쉬움이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고,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순간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어차피 영화는 ‘환..
역시 화두는 이야기와 테크놀로지다. 때론 취향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부실한 이야기와 뛰어난 비주얼의 기묘한 비례관계를 너그러이 인정하는 관객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에 놀라곤 한다. 2시간 안팎의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 자체의 반짝임에 몰두할 것인지, 아니면 스크린에 펼쳐지는 문학적 서술에 주목할 것인지는 어차피 관객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이 둘이 보기 좋게 결합하기를 바라는 관객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사실엔 여전히 의문이다. 영화를 철저히 상업적 측면에서 바라보더라도, 내게는 그것이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긍정의 태도’로 여겨지기에 앞서, 보다 나은 상품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독 최근의 영화들 중에서 어느 한 요소, 특히 영화의 비주얼이나 테크놀로지에 집착하는 태..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때는 한밤 중. 고속도로를 달리다 지름길로 길을 튼 폭스 부부의 차 안엔 차가운 기운이 가득하다. 데이빗(루크 윌슨)과 에이미(케이트 베킨세일)는 아들 찰리를 잃은 슬픔으로부터 비롯된 서로간의 오해로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다. 지름길을 찾으려다 길을 헤매고 있는 데이빗을 비꼬는 에이미와, 아픔을 잊으려는 아내에게 자꾸만 아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이빗. 가로등 하나 없이 적막한 도로의 어둠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두 사람. 운전대를 쥔 데이빗이 지름길(로 생각되는 알 수 없는 길)로 접어든 바람에 이 두 사람은 그야말로 어둠에 내던져진다. 보이는 것은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숙박시설을 겸한 주유소 뿐. 이곳에서 도움을 받아 낯선 곳을 벗어나려는 두 사람의 시도는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