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스 트웰브』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테스의 명연기(!)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편보다 뒤떨어지는 영화의 분위기를 이 코미디 한방으로 만회하려는 것 같은 느낌에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테스와 브루스 윌리스가 펼치는 한바탕 코미디쇼는 그자체로 즐겁긴 했지만, 마치 이 대목에 모든 것을 걸어버리고 도망가는(?) 제작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인 『오션스 13』은 그런 과거를 반성하듯 아예 1편의 방식으로 회귀한 영화다. 대립각을 세우는 적의 존재도 『오션스 일레븐』과 흡사하고, 2편에 비해 쓸데없는 수다도 조금 줄었으며, 무엇보다도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듯 1편의 엔딩을 그대로 답습하며 끝을 맺는다. 한동안 개개인의 삶에 충실하던 오션과 친구들은..
록밴드 ‘스틸 드래곤(Steel Dragon)’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들의 음악은 물론, 몸짓 하나까지도 똑같이 카피하려는 주인공 이지(마크 월버그)는 타인의 삶을 쫓는 청년이다. 자신이 보컬로 있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에게 ‘스틸 드래곤’의 기타리스트가 연주하는 피킹 하모닉스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초반부에서부터 이지의 정신세계가 어떤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스틸 드래곤’뿐이다. 그러다 진짜 원조밴드의 부르심을 받게 된 이지. 언뜻 행복한 결말 같지만, 이때부터 이지의 내면에 갈등이 싹튼다. 자, ‘워너비’ 감성의 주인공이 영화의 말미에 무엇을 얻게 될지는 분명하다. 결국 이지는 신기루 같은 자신의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시리즈물의 후속작들은 항상 전편과 비교당하는 핸디캡을 안고 출발한다. 더구나 그 전편이 꽤 훌륭할 경우엔 속편들은 작품자체로 평가받지 못하는 부당한 대우마저도 감수해야 한다. 속편의 숙명과도 같은 이 냉정한 평가는 완벽한 팀웍으로 완전범죄를 꿈꾸는 오션 일당이라고 해도 피해갈 수 없다. 유쾌한 도둑질이라는 기본 소재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더 재밌게 만들기가 어려운 일이란 것쯤은 일개 관객이라 해도 짐작 하고 있다. 기껏해야 동어반복이라는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는 『오션스 트웰브』는 그래서 캐릭터들의 수다는 더 늘어나고, 코미디는 더 황당해지고, 범죄는 더 엉망이 되어가는 영화가 되었다. 오션 일당이 어떤 범행을 해도 신기해하지 않을 관객들을 위해 여러 잔가지들을 더 키운 격이랄까?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언젠가 라디오 게스트로 나온 노브레인의 이성우는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이 출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이었는데, 그것은 “이준익 감독님은 펑크(Punk)를 훵크(Funk)로 부르시는 것만 빼면 다 좋다”는 식의 장난 섞인 말이었다. 그것이 이준익 감독의 장르의 구분에 대한 혼동인지, 단순한 발음상의 습관을 의미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이성우의 이 장난스런 말이 우습게도 『즐거운 인생』을 향한 나의 ‘오해’를 불러왔음을 인정해야겠다. 음악장르를 헷갈리는 감독이 만드는 밴드영화라면 그 영화의 결과가 어떨지 뻔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오, 이런 건방진 오만. 그것이 지금에 와서 왜 ‘오해’라 불리고 나의 태도가 어째..
말쑥한 차림의 정장이 잘 어울리는, 한없이 선량한 도둑들이 주인공인 『오션스 일레븐』은 코미디이자 판타지 영화다. 특히 이 도둑그룹의 우두머리와 참모격인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나 눈부셔서 이들이 벌이는 행위가 범죄라는 상상조차 들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범행의 성패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데, 출소한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이 멤버들을 하나둘 모으는 영화 초반부의 익살맞음, 이를테면 자금을 조달할 물주인 루벤(엘리엇 굴드)이 오션과 러스티(브래드 피트)에게 과거 세 명의 카지노 도둑들을 언급하며 그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설명하는 장면만 보더라도 관객은 이 영화가 선량한(?) 범죄의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임을 거의 확신할 수 있다. 소더버그가 『오션스 일레븐』으로 성취하고자 한 것은 뒤통수를 때리는 통쾌한..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엑스박스, PSP, 휴대폰, 아이팟과 아이튠즈, 유튜브 등 지금 십대의 문화적 기호들이 총출동하는 『디스터비아』는 젠체하지 않는 담백한 스릴러다. 아니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어둡고 음침한 느낌의 장르명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유쾌하고 재미있다. 『디스터비아』는 아마도 올해가 지나면 기억나지 않아도 좋을 가벼운 영화지만, 관객의 두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상해줄 만큼의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다. 이 영화가 재밌는 이유는 그것의 치밀한 이야기구성에 있지 않다. 『디스터비아』는 일부 영화팬들이 목매는 휘황찬란한 CG를 보여주지도 않고 탄탄하다고 부를만한 플롯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관객이 범인이 누구인지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는 이 영화의 재미는 오히려 소소한 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