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영웅들은 모두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인류를 구원하고자 한 네오는 물론이고, 손목에서 뿜어낸 거미줄로 도시의 미화원들을 힘들게 하는 스파이더맨,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면 갈고리가 주먹을 뚫고 나오는 울버린까지, 이제는 뭔가 신기한 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그럴듯한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말하자면 지금의 헐리웃 액션 영화는 이런 초능력자들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그런데 오랜 세월 칩거하고 있다가, 그런 시대의 흐름을 못 참고 등장한 사람이 여기 있다. 절대 죽지 않는, 아니 죽는 것 빼고는 다 잘하는 남자 존 맥클레인(John McClane: Bruce Willis)이 돌아온 것이다! 네오가 100명의 스미스와 장렬하게 싸우고 있을 ..
지브리의 2006년작 『게드전기』는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의 ‘어스시(Earthsea)’ 연작 중 3권 “머나먼 바닷가”와 4권 “테하누”의 내용을 서로 연결해 각색한 작품이다. 지브리 미술관의 관장으로 재직하다 『게드전기』로 애니메이션계에 데뷔하는 감독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는 그의 아버지이자 지브리의 얼굴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어스시’의 세계를 마침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에 짙게 드리워진 어슐러 르 귄의 영향은, 영화평론가 이상용이『게드전기』의 개봉에 맞춰 필름2.0에 기고한 “지브리 시간 속 용의 전설: 『게드전기』와 미야자키, 어슐러 르 귄의 세계”(2006년 8월 8일자 필름2.0)라는 특집기사에 ..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나온다는 장소들만 찾아가 그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 마이크 엔슬린(Mike Enslin: John Cusack)은 사실 영혼의 존재에 회의적인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귀신이란 손님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된 호텔이, 왕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꺼내든 마지막 홍보수단에 불과하다. 크게 주목받지 못한 소설가였던 그 자신에게도 귀신의 장소는 생계를 이어주는 글 소재 이상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한통의 엽서가 도착한다. 뉴욕에 위치한 돌핀 호텔의 1408호에 묵지 말라는 내용의 엽서. 엔슬린은 돌핀 호텔 1408호에 관한 사건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며 점차 그 장소에 흥미를 느낀다. 각각의 수를 합치면 불길한 숫자 13이 되는 1408호는 그에게 글을 쓸 좋은 소재거..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개에 얽힌 두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이렇다. 1957년 남극에 파견된 11명의 일본 탐험대와 25마리의 썰매개는 예상치 못한 악천후로 남극탐사작업을 그만두고 기지를 철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과정에서 15마리의 썰매개가 돌아가지 못하고 남극에 남겨지는데, 그로부터 2년 후인 59년 1월, 탐사작업을 재개하기위해 남극에 돌아온 일본의 탐험대는 15마리의 개중 2마리가 생존해 있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미국과학재단(NSF)의 남극탐사기지에 도착한 지질학자 맥클라렌(McClaren: Bruce Greenwood)은 화성의 유성을 찾기 위해 탐사가이드 셰퍼드(Shepard: Paul Walker)와 여덟 마리 썰매개..
재밌는 현상이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디 워D-War"를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외침이 들리는 반대쪽에는, 보지도 않고 ”디 워“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한 감독의 피나는 ‘노력(또는 고생)’과 그 ‘영화의 완성도’는 정작 별개의 문제다. 높은 ‘영화의 완성도’는 ‘노력’없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고생만 한다고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작인 ”용가리“에 쏟아진 각종 비판과 비난들이 부당하다며 절치부심하여 만든 ”디 워“는 과연 감독인 심형래의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물일까. 이래저래 떠도는 말보다 이무기의 실체를 직접 보는 편이 후련할 듯 했다. 그래서 극장을 찾았다. 심형래의 프로필이 박힌 제작사의 로고가 지나면, 한글과 용의 형상, 그리고 우리의 민화들이 어우러진 오프닝 ..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프닝 비디오도 없던 시절, 명절마다 TV에서 방영해주는 두 편의 영화는 내 유년시절을 고스란히 지배했다. 이 두 편의 영화모두 유명한 시리즈물이었는데 첫 번째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두 번째 영화는 리처드 도너의 “수퍼맨”이었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광선검은 당시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아이템이었으나 현실에서 재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야광물질로 만든 조악한 장난감이 있었지만 영화에서 보기와는 너무 딴판인 그 몰골(?) 때문에 그다지 큰 관심은 끌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에 수퍼맨이 두르고 나온 빨간 망토는 집안을 조금만 뒤져보면 나오는 붉은 보자기로 웬만큼 재현이 가능했다. 보자기를 두르고 마치 수퍼맨이 된 양 집안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던 기억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