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탓해야 할까.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종종 비판할 대상을 찾는다. 때론 그 과녁이 틀리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볼 요량으로, 혹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구차한 변명의 강조로 이 비난의 화살을 누군가를 향해 겨눈다. 기나긴 교육을 받고 자연스레 사회 안에 안착해야 할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제자리를 못 찾거나, 비정규직이라는 위태로운 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상황이다. 일찌감치 사회에 편입하는데 성공한 인생선배들은 그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깨달으라 거의 책망조로 그들을 타이른다. 능력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은 눈높이, 힘든 일을 회피하려는 경향 등을 지적하면서. 결국 20대, 더 나아가서는 머지않아 20대가 될 10대들의 이 밝지 않은 미래상은 전적으로 그..
가슴이 먹먹하다. 벚꽃과 함께 날려버린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 여린 심장에 파고들어 따끔거린다. 뭐야, 이거.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평범한 듯 쿨한 소년과 시한부 인생의 미소녀가 서로 좋아해서 어쩔 줄 모르는 시시한 이야기는 안 봐도 뻔하다고 그렇게 스스로 당부했건만. 그러나 우습게도 어느새 나는 일본의 어느 마을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낸 소설 속 소년이 되어있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장의 어디쯤에서부터 그런 생각이 시작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분명 이건 내가 상상했던 그 이야기가 맞는데. 안 봐도 독자의 손바닥 안일 것 같았던. 그렇다. 카타야마 쿄이치의 틴에이저 러브스토리, 는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기억되는 그때의 소중한 순간을 가슴에 아로새기기 위해 여러 가지 관습적인 소재들을 끌어 모은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다 읽고 난 직후 미국의 금융위기 뉴스가 들려왔다. 이거 참 묘한 타이밍이다. 전세계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 거대한 나라의 휘청거림은 결코 그 국내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가 흔들거리고 있다. 혹자는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실패한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경제란 워낙 여러 가지 변수가 맞물려있는 분야여서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조건 없는 자유무역과 규제완화를 부르짖던 미국이 공적인 손이 필요한 구제금융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다. 과연 그들이 부르짖던 무한경쟁과 무한자유의 세계는 유토피아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이었을까. 여기에 이 물음에 대한 절대적 답안은 아니지만 무척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
평소 말이 별로 없는 나에게 대화란 하나의 일과 같다. 누군가를 마주 본 채 그 사람의 생각과 나의 의견을 교환하는 이 행위는 적잖은 주의력을 필요로 한다. 아마도 원체 부족한 말솜씨에다가 말실수에 대한 지나친 조심이 이 정력소모의 주요인일 것이다. 대화는 결국 사람간의 소통이다. 나처럼 힘 들이며 말을 나누든, 쉽게 단어들을 쏟아내든 간에 어쨌든 이 행위가 이뤄지는 순간만은 혼자이기 위한 시간이 아닌 것이다. 대화중인 당사자들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데 힘쓰느냐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데에 더 집중하느냐는 양 갈래의 길에 놓인다. 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우선 들으라고 조언한다.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다. 각자의 주장만을 쏟아놓고 서로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소통이라 부를 수 없다. ..
집 근처의 스타벅스에 종종 가는 편이다. 조그만 매장이라 그런지 내가 가는 시간대엔 사람도 별로 없어, 커피나 차 한잔 사서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에 참 좋다. 물론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프랜차이즈 카페를 집과는 또 다른 편안한 휴식공간이라 생각하고 있다. 과거의 커피숍처럼 굳이 누군가와 함께 와서 담소를 나눠야 어울릴만한 장소가 아니라, 혼자 오더라도 담배냄새 하나 배어있지 않은 깔끔한 좌석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좋은 곳이 지금의 스타벅스를 비롯한 프랜차이즈 카페들일 것이다. 문제는 커피의 가격인데, 확실히 스타벅스의 커피값은 가볍지 않다. 이 책 의 표지에도 적혀있듯 그것을 ‘점심 값보다 비싼 커피 한 ..
하마터면 목에서 피를 볼 것만 같은 두려움에 아침마다 면도날을 사용하기가 망설여진다. 벌써 수년째 해오던 일인데다 지금껏 그런 불상사는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요즘은 자꾸 불길한 상상이 든다. 그것뿐인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왜 하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해서야 현관문을 잠갔는지 아닌지 헛갈리는 걸까. 열쇠를 든 모습은 기억나지만 문을 잠그는 순간만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조개 껍질 속 조갯살 빼먹듯 누군가가 내 기억의 그 부분만 쏙 빼먹은 느낌이다. 밤이면 불편한 증세가 하나 더 튀어나온다. 눈을 감으면 곧바로 꿈나라로 가야 하건만 어찌된 일인지 잠에 빠져들기 직전에 어떤 형상이 기괴한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주위가 고요하면 이런 증세는 더욱 심해지는데, 그래서 자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