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영웅들은 모두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인류를 구원하고자 한 네오는 물론이고, 손목에서 뿜어낸 거미줄로 도시의 미화원들을 힘들게 하는 스파이더맨,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면 갈고리가 주먹을 뚫고 나오는 울버린까지, 이제는 뭔가 신기한 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그럴듯한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말하자면 지금의 헐리웃 액션 영화는 이런 초능력자들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그런데 오랜 세월 칩거하고 있다가, 그런 시대의 흐름을 못 참고 등장한 사람이 여기 있다. 절대 죽지 않는, 아니 죽는 것 빼고는 다 잘하는 남자 존 맥클레인(John McClane: Bruce Willis)이 돌아온 것이다! 네오가 100명의 스미스와 장렬하게 싸우고 있을 ..
지브리의 2006년작 『게드전기』는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의 ‘어스시(Earthsea)’ 연작 중 3권 “머나먼 바닷가”와 4권 “테하누”의 내용을 서로 연결해 각색한 작품이다. 지브리 미술관의 관장으로 재직하다 『게드전기』로 애니메이션계에 데뷔하는 감독 미야자키 고로(宮崎吾朗)는 그의 아버지이자 지브리의 얼굴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어스시’의 세계를 마침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에 짙게 드리워진 어슐러 르 귄의 영향은, 영화평론가 이상용이『게드전기』의 개봉에 맞춰 필름2.0에 기고한 “지브리 시간 속 용의 전설: 『게드전기』와 미야자키, 어슐러 르 귄의 세계”(2006년 8월 8일자 필름2.0)라는 특집기사에 ..
더보기 Def Leppard: 1977~1984 80년대 가장 거대한 메탈밴드 중 하나로 기억되는 데프 레퍼드의 출발은 77년 영국 셰필드(Sheffield)의 어느 스푼공장이 그 무대가 되었다. 베이스를 연주하던 릭 새비지(Rick Savage)와 기타의 피트 윌리스(Pete Willis), 그리고 드럼의 토니 케닝스(Tony Kennings)는 당시 10대의 나이로 Atomic Mass라는 밴드를 결성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새로 합류한 보컬리스트 조 엘리엇(Joe Elliott)이 Def Leppard(Deaf Leopard를 발음대로 표기한)라는 밴드명을 가져오면서 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게 된다. 스푼공장에서의 리허설을 마친 후, 이들이 여섯 명의 친구들을 관객으로 삼아 연주한 크리스마스 공연은 ..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나온다는 장소들만 찾아가 그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 마이크 엔슬린(Mike Enslin: John Cusack)은 사실 영혼의 존재에 회의적인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귀신이란 손님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된 호텔이, 왕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꺼내든 마지막 홍보수단에 불과하다. 크게 주목받지 못한 소설가였던 그 자신에게도 귀신의 장소는 생계를 이어주는 글 소재 이상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한통의 엽서가 도착한다. 뉴욕에 위치한 돌핀 호텔의 1408호에 묵지 말라는 내용의 엽서. 엔슬린은 돌핀 호텔 1408호에 관한 사건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며 점차 그 장소에 흥미를 느낀다. 각각의 수를 합치면 불길한 숫자 13이 되는 1408호는 그에게 글을 쓸 좋은 소재거..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개에 얽힌 두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이렇다. 1957년 남극에 파견된 11명의 일본 탐험대와 25마리의 썰매개는 예상치 못한 악천후로 남극탐사작업을 그만두고 기지를 철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과정에서 15마리의 썰매개가 돌아가지 못하고 남극에 남겨지는데, 그로부터 2년 후인 59년 1월, 탐사작업을 재개하기위해 남극에 돌아온 일본의 탐험대는 15마리의 개중 2마리가 생존해 있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미국과학재단(NSF)의 남극탐사기지에 도착한 지질학자 맥클라렌(McClaren: Bruce Greenwood)은 화성의 유성을 찾기 위해 탐사가이드 셰퍼드(Shepard: Paul Walker)와 여덟 마리 썰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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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 블로그에 글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것을 보며 왠지 모를 보람을 느끼던 일요일밤. 그러나 티스토리는 나의 평화로운 일요일 밤을 앗아가 버렸다. 8시 무렵 영화 “에이트 빌로우”의 리뷰를 포스팅하고 다른 게시물들의 태그를 정리하려 했던 나의 욕심이 화근. 이 놈의 티스토리는 왜 태그를 편집하려 왜 글수정을 클릭해야 하는지. 글수정하고 저장한 후 ‘저장하고 있습니다’라는 친절한 문구가 뜨며 창이 멈춘 적이 벌써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나의 포스팅은 뒤죽박죽이 되어 그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곤 한다. 스킨이 엉킨건지, 데이터가 엉킨건지 컴맹에 가까운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이 같은 상황이 나의 평화롭고 조용한 일요일 저녁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
1990년대 초반, 이른바 얼터너티브, 그런지 음악의 카테고리 내에서 활약한 밴드들 중 가장 먼저 상업적 성공을 기록한 팀은 Nirvana도 Pearl Jam도 아니었다. Nirvana가 두 번째 앨범이자 실질적인 메이저 데뷔앨범이었던 『Nevermind』로 대박을 터뜨리고, Pearl Jam이 『Ten』을 내놓으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때는 91년이었는데, 이는 데뷔앨범 『Facelift』로 이미 골드를 달성한 동향(同鄕)밴드, Alice In Chains(이하 AIC)의 출발보다 1년이나 늦은 것이었다. 이후『Facelift』는 빌보드 앨범순위(The Billboard 200)에 무려 59주 동안 머무르며 그런지 밴드들이 락계의 주류를 잠식하는 현상의 출발점임을 자처했다. AIC의 출발은 그들의 다..
드럼에 심취했던 1967년생의 청년 레인 스테일리Layne Staley는 1987년, 시애틀Seattle의 Music Bank라는 곳에서 기타리스트 제리 캔트럴Jerry Cantrell을 만난다. 음악적인 합일점을 찾아 곧바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스테일리가 미리 만들어 둔 팀명, Alice N Chains를 Alice In Chains(이하 AIC)로 바꾸고, 캔트럴의 친구인 마이크 스타Mike Starr와 션 키니Sean Kinney를 불러들여 밴드를 완성한다. 이들은 시애틀의 클럽을 돌며 점차 명성을 쌓아 가는데, 초창기 이들이 지향했던 음악은 락큰롤의 정서가 깊게 베인 글램, 헤어메탈에 가까웠다. AIC가 헤비메탈 세대에게 어필할 음악을 만들 줄 안다고 여긴 콜롬비아 레코드는 89년 이들과 계약을..
재밌는 현상이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디 워D-War"를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외침이 들리는 반대쪽에는, 보지도 않고 ”디 워“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한 감독의 피나는 ‘노력(또는 고생)’과 그 ‘영화의 완성도’는 정작 별개의 문제다. 높은 ‘영화의 완성도’는 ‘노력’없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고생만 한다고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작인 ”용가리“에 쏟아진 각종 비판과 비난들이 부당하다며 절치부심하여 만든 ”디 워“는 과연 감독인 심형래의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물일까. 이래저래 떠도는 말보다 이무기의 실체를 직접 보는 편이 후련할 듯 했다. 그래서 극장을 찾았다. 심형래의 프로필이 박힌 제작사의 로고가 지나면, 한글과 용의 형상, 그리고 우리의 민화들이 어우러진 오프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