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urne Ultimatum / 본 얼티메이텀 (2007)

『본 얼티메이텀』이 폴 그린그래스의 『본 슈프리머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말은 비단 그의 연출 스타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본 얼티메이텀』은 정확히 전작의 마지막(더 정확히는 엔딩의 전 장면)에서 출발한다. 전편들을 보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의 매력을 느끼는 데에 큰 지장은 없지만, 적어도 『본 슈프리머시』정도는 한번 쯤 확인하고 본 영화를 보는 것이 보는 이의 만족감을 배가시킬 것이다. 게다가 제작진은 『본 얼티메이텀』의 중간에 『본 슈프리머시』의 엔딩을 삽입하는 영리함을 보여 주기도 하며, 이것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 이 대목에서 작은 탄성을 지른 것은 과연 나뿐일까?


시리즈 전편이 일정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속편들이 첫작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그러나 『본 얼티메이텀』은 전편들을 관통했던 일정한 주제의식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것을 화려한 액션의 품 안에 녹여낸다. 『본 얼티메이텀』은 『본 슈프리머시』와 성공적으로 접합하면서 여기에 제이슨 본의 탄생을 암시하는 과거를 하나 덧붙인다. 그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둘러싼 허무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세 편의 영화로 펼쳐진 긴 여정을 마무리 한다.

 


『본 얼티메이텀』은 2편보다 더욱 액션에 집착한다. 한 예로 닐 대니얼스(콜린 스틴턴)를 암살하기 위해 보내진 요원 데쉬(조이 앤사)와 제이슨 본 간의 추격과 격투는 무려 10여분 동안(내 기억이 맞다면) 펼쳐진다. 바이크와 건물을 이용한 추격과 액션, 그리고 맨손격투는 분명 제작진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장면들이겠지만, 한편으론 블록버스터 영화가 한 편씩 쌓일 때마다 더욱 길어지는 의미 없는 CG장면들의 나열을 보듯 때로는 지루하고 과도해 보이기까지 한다. 『본 슈프리머시』의 엔딩을 멋지게 활용한 본과 파멜라 랜디(조운 앨런)의 재치 있는 작전 이후 펼쳐지는 카 체이스 시퀀스도 마찬가지로, 수대의 차량을 폐차장으로 몰아넣듯 박살내는 박진감 넘치는 연출에도 불구하고 전편의 카피 이상의 의미와 흥분을 안겨주진 못한다. 물론 액션씬만 나오면 졸기 일쑤인 나의 독특한 체질을 우선 탓해야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치고받는 주먹질과 어지러운 추격전보다 제이슨 본의 용의주도함이 훨씬 인상적인 것을 어쩌랴.


제이슨 본이 한 나라의 안보체제를 전복할 만큼 대단하다고 믿어온 사람들에게는 안 됐지만, 『본 얼티메이텀』의 결말은 안전한 통로를 밟는다. 트레드스톤과 블랙브라이어로 상징되는 비밀 암살프로젝트는 본과 파멜라 랜디라는 선량한 내부요원들에 의해 격파되며, 이것은 이 시리즈가 처음부터 CIA 혹은 미군에 대한 정치적 전복을 꾀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말은 내부에 썩은 조직이 생겨나더라도 그들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트레드스톤과 블랙브라이어의 참가자들은 영화 속에서 범법자로 묘사되고 관련 인물들도 대개 비열하거나 음흉한 것처럼 표현된다. 말하자면 스스로의 선택으로 암살자가 된 제이슨 본은 기억을 잃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슬러 올라감과 동시에, 썩어서 악취를 풍기는 미국의 내부조직을 완벽하게 도려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은 치료받고 현실세계의 악행은 쑥스런 고백으로 용서된다. ‘오션스 시리즈’가 그렇듯 ‘본 시리즈’도 이쯤에서 멈춰서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아,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고? 그럼 안심이고.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2007/10/11 - The Bourne Supremacy / 본 슈프리머시 (2004) 2007/10/09 - The Bourne Identity / 본 아이덴티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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