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우선 이 한 명의 독자가 주인공 바리의 고단한 인생을 이해하고 그것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비관적인 대답. 땅을 마주하고도 우리네 일상의 무관심에 너무 쉬이 묻혀버리는, 저 가깝고도 먼 지역에서 태어난 이 소녀의 비극적인 인생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겁다. 우리가 쉽게 부르짖는 삶의 고난과 불행은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견주어본다면 어쩌면 한낮 사치스런 자기연민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가족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외로움, 그리고 이후 그녀를 감싸는 온갖 불행의 씨앗들. 바리를 짓누르는 거대한 슬픔은 풀린 실타래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바리데기>는 단지 상상 속에만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생한 현실 인식 안에서 태어난 이 소녀의 이야기는 지금도 가까운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실상과 분명 닮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그녀의 젊은 한 삶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바리는 지독한 경제난과 신격화된 지도자의 죽음으로 혼란을 맞는 90년대의 북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을 뒤로하고 급기야 일곱 번째의 ‘딸’로 태어난 바리는 어려서부터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길 잃은 영혼들과 마주치는 바리. ‘신 내림’을 타고난 아이다. 특출한 능력을 가진 바리의 어린 시절은 급변하는 북한의 현실과 맞물려 묘사된다. 악화되는 식량난과 불안한 공화국의 정세가 바리 집안의 풍경에 스며들어 있다. 이들의 삶은 풍요로운 짧은 시간을 지나 곧 비극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주인공 바리의 인생은 기구한 운명 속으로 곤두박질 친다. 그녀는 이제 고향을 떠나 중국을 거쳐 영국으로 향할 복잡한 인생의 길과 마주한다. 손녀의 신비한 능력의 근원지로 여겨지는 할머니는 이런 바리에게 그녀의 운명을 책임질 무거운 예시를 던져주고 떠나간다.

바리는 세상을 구원하는 생명수를 찾을 운명을 타고난다. 작가는 이 세계를 하나의 혼돈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주인공 바리가 세계를 무대로 고난을 겪는 <바리데기> 안에는 인종, 성별, 종교를 둘러싼 작은 다툼과 큰 전쟁이 하나의 용광로처럼 뒤섞여 있다.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그 자신의 의지와 희망이 아니라 어지러운 세계 안에서 그가 처해 있는 위치가 된다. 황석영은 이렇게 사람의 외피를 장식하는 요소들로 끝없이 갈등하는 인류가 과연 구원받을 수 있는지 대답은 해주지 않은 채 독자에게 묻는다. 바리는 소설의 마지막 생명수라는 이름의 물을 마신다. 과연 생명수 안에 구원의 메시지가 있었을까? 이 소녀는 고향을 떠나 다른 세상의 도시를 걷다 문득 생각한다. 삶이 위태로운 가난과 낭비가 일상화된 풍요. 세계의 불평등, 불균형이 드러나는 이 생생한 차이 앞에서 바리는 이 도시 속 사람들이 자신들을 ‘버렸고 모른 척 했다’고 여긴다. 왜 세상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교만’과 ‘절망’이 서로를 물어뜯는 현실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가? <바리데기>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사회의 갈등은 희미한 생명수의 존재처럼 영영 그 해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리의 인생을 찬찬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드디어 드러나는 것은, 현세의 지옥으로부터 인류의 구하는 것이 결코 원대한 이상만은 아니리라는 작은 힌트이다. 그것은 생명수라고 명명된 어떤 신비스런 액체, 혹은 죽음을 불사하는 개인의 숭고한 희생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변의 작은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믿음이다. 제대로 쳐다보기조차 힘든 바리의 고단한 인생에서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고향집에서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돌봐줬던 미꾸리 아저씨, 영국에 밀입국한 이후로 그녀를 친 딸처럼 여겨준 루와 탄 아저씨, 바리와 마찬가지로 슬픔으로 점철된 과거를 가진 압둘 할아버지 등은 이 여린 소녀의 주변을 밝히는 따뜻한 촛불과 같은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 처절한 삶의 묘사에도 불구하고 <바리데기>는 절망의 나락에서 언젠가는 구조될 것만 같은 소설이다. 세계 도처에 널려있는 가난과 전쟁, 차별과 불공평 속에서 우리와 그들을 구원하는 방법은 바로 그들이 바리에게 보여준 것 같은 소소한 관심들일 것이다. 그것은 꿈 속에 나타난 할머니가 말하는 ‘생명수를 알아보는 마음’, 곧 <바리데기>가 고귀한 생명수 대신 우리에게 제시하는 세계를 보는 눈이기도 하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