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 The Rookie (2002)

사내의 꿈은 메이저리그라는 무대에서 공을 던지는 것뿐이었다. 리그우승이나 월드시리즈 반지는 아마 그 다음 단계의 희망이었을 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짐 모리스는 메이저리그라는 문턱조차 넘을 수 없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두려워할 치명적인 부상이 그의 희망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주부를 대상으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주 들을 법한 그저 안타까운 라디오 사연 중 하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헐리웃, 그것도 디즈니가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리 없다. 짐 모리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하나의 발자취를 남긴 투수다. 그것은 역대 최다승, 최다삼진기록 같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로 평범한 생을 살다 35세의 나이에 마침내 메이저리그 데뷔무대를 가진다. 이조차도 역대 최고령 신인기록은 아니지만.

<루키>는 이 고령의 신인투수가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하는 괴물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 한 발을 내딛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디즈니표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려도 좋을 감동의 인간승리 이야기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만드는 가벼운 유머를 곁들인다. 가족간의 갈등과 그 해소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기본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덧입혀져 짐 모리스의 실화는 설득력 있는 영화 속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헐리웃 스포츠드라마와 이 영화의 다른 점이라면, <루키>의 주인공은 여타 영화에서의 그들과 달리 위대한 승리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는 것. 30대 중반에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이 흥미로운 이력의 투수에겐 빽빽한 관중에 둘러싸여 빅리그의 강타자를 상대로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지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승리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명하게도 딱 여기까지만 보여주고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후 두 시즌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그가 실제로 거둔 평범한 성적을 영화 속에서 다 보여줬더라도 그것이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폄훼할 수는 없었으리라.



<인 굿 컴퍼니>에서 봤던 데니스 퀘이드의 얼굴에는 직장에서의 압박과 그로 인한 가장으로서의 중압감이 실감나게 새겨져 있었다. 그전까진 그의 잘생긴 얼굴이 딸의 학비 때문에 집을 저당 잡혀야 하고 새파랗게 젊은 상사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버리는 현실을 감내하는 아버지의 얼굴에 이토록 잘 어울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루키>에서도 데니스 퀘이드는 비슷한 역할을 연기한다. 다만 이 영화에선 젊은 시절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느라 분투하는 가장이라는 점이 다르다. 극중 짐 모리스를 연기한 데니스 퀘이드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편 혹은 아버지의 역할을 마치 몸에 딱 맞는 편안한 옷처럼 소화해 낸다. 시기적으로 <인 굿 컴퍼니>보다 2년 전 작품이라 그런지 이 두 영화를 떠올리면 마치 동일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따라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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