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rek The Third / 슈렉 3 (2007)

‘남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생긴 대로 당당하게 살아라!’가 어린이 관객들을 위한 ‘슈렉 시리즈’의 기본 모토이긴 해도, 성인 관객들을 혹하게 만든 이 녹색 괴물의 매력을 설교조의 교훈에 묻히게 만드는 건 이 시리즈에 대한 기만이다. 적어도 머리 큰 팬들은 그런 고리타분한 메시지가 아니라, 낡은 것을 패러디하고 기대되는 것의 전복을 꾀하는 ‘슈렉’의 기발함에 더 집중할 테니까. 동화 속의 들러리들을 주인공을 위시한 주요 등장인물로 앉혀놓고 과거의 찬란했던 주인공들을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리는 그 발상의 전환. 그게 어른들이 이 ‘깜찍한’ 녹색 커플의 모험에 열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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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뭐든지 두어 번 뒤집고 나면 결국 눈앞에 있는 건 제자리로 돌아온 원본이다. 아니면 더 이상 뒤집을 구석이 남아 있지 않던지. 그래서 <슈렉 3>는 스스로를 패러디함과 동시에 영화 곳곳에 맥락과 상관없는 웃음포인트들을 심어 놓는다. 결국 이번엔 어쩔 수 없이 그냥 웃겨주겠다는 말이다. 2편에서 화제가 된 장화신은 고양이의 명 표정연기를 재활용하거나, 캐릭터들의 슬랩스틱에 주목하거나, 싱거운 수다들을 가득 담아 놓으면서 <슈렉 3>는 매 순간 웃겨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사이사이에 영화는 어수룩한 아서(저스틴 팀벌레이크)를 끌어들여 동화 속 악당들에게 “언제까지 그러고 살텐가?”라 외치게 만들고, 슈렉에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씌우면서, 우리에겐 “웃지만 말고 이것도 좀 느껴봐”라며 호소하고 있다.

 


패러디를 무기로 한 시리즈의 색깔이 출발점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그것은 애초에 비웃기로 했던 그 대상을 닮아간다. 전편들도 사실 정치적 올바름과 함께 시대에 맞춘 교훈을 담고 있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것을 굳이 캐릭터의 입을 통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기에 ‘쿨’한 동화가 된 것이다. <슈렉 3>는 메시지 자체가 낡은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 전달 방식도 그들의 ‘적’의 그것과 쏙 빼닮아서, 결과적으로 시리즈의 장점을 많이 희석시킨 셈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랴, 슈렉과 동키는 아버지가 되었고 ‘슈렉 시리즈’는 이미 거대한 프랜차이즈가 되어 기득권에 편입되어 버렸는걸. 차기 왕으로까지 거론되는 40대의 <슈렉 3>가 늪지대의 심술쟁이였던 20대의 <슈렉>으로 돌아갈 순 없지 않겠는가. 배철수 아저씨가 그랬다, “20대는 불평해도 되지만, 40대가 그러면 꼴불견”이라고. 근데, 슈렉만은 좀 꼴불견이 되면 안 될까요?

그렇다고 <슈렉 3>를 형편없는 영화로 치부해버리자니 이 시리즈의 열렬한 지지자인 내 맘이 편치 못하다. 게다가 이 영화가 던져주는 웃음의 요소는 패러디와 자기비하를 골자로 하고 있기에 여전히 눈물 날 만큼 재밌다. <브링 잇 온>에서 가져온 듯한 10대 문화에 대한 조소와 슈렉의 장인어른 개구리왕과 피노키오 등 전편의 캐릭터의 창의적인 활용, 그리고  ‘완전 깨는’ 공주들의 못 말리는 활약은 이 시리즈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증거다. 특히 장인어른의 ‘끈질긴’ 생명력과 피노키오의 태생적 ‘솔직함’은 웃음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고, 아름다운 뮤지컬송을 BGM으로 부르다 느닷없이 ‘Immigrant Song’과 ‘Barracuda'로 이어지며 펼쳐지는 공주들의 용맹함(?)은 ‘슈렉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관객들의 특권이다.


게다가 너무나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은 슈렉 주니어들! 이제 이 삼촌은 슈렉과 피오나가 아니라 바로 너희 때문에 다음편이 기다려진단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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