どろろ / 도로로 (2007)



<도로로>는 영화 속 요괴들만큼이나 뭔가 요상한 영화다. 원작자의 거대한 이름값으로 볼 때, 이 영화는 분명 제작비가 액수 그대로 화면에 구체화되는 실감나는 프로젝트가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도로로>는 어딘가 빈 구석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조악한 CG는 둘째 치고라도 TV판 <파워레인저>(혹은 아주 먼 옛날의 <천녀유혼>)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괴수(요괴)의 코스튬은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작품의 방향자체가 애초에 수용자의 기대와 달랐던 것이 아닌가 한다. 사뭇 심각해질 수 있는 영화의 설정을 밝게 이끌고자 했던 도로로(시바사키 코우)의 캐릭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화 <도로로>는 절반의 어설픔을 아예 코미디로 대체하는 전략을 취하는데, 주인공 햐키마루(츠마부키 사토시)가 요괴퇴치 퍼레이드를 선보이는 영화의 중반부가 이런 의도와 부합한다. 심형래의 초기 영화에서 공룡탈을 뒤집어 쓴 배우가 느꼈을 것과 유사한 요괴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장면들. 21세기에 나타난 이 솔직한 유치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전국통일의 야망으로 아들의 신체를 요괴들에게 바친 카게미츠(나카이 키이치)는 그 대가로 커다란 힘을 얻는다. 껍데기만 남은 채 모든 신체기관이 없이 태어난 아들을 차마 죽일 순 없었던 어머니 유리가 햐키마루를 작은 바구니에 담아 강에 흘려보냈고, 하류에서 바구니를 발견한 주술사 쥬카이(하라다 요시오)는 아이의 비극을 안타깝게 느낀 나머지 전란 통에 희생된 아이들의 시체를 모아 햐키마루의 몸을 만들기 시작한다. 햐키마루에게 신체를 줌과 동시에 검술과 말하기 등 각종 교육을 실시한 쥬카이가 죽은 후, 그를 아버지로 따랐던 햐키마루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의 몸을 48마리의 요괴가 나눠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 비극의 원인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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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마리의 요괴들에게 몸을 갈기갈기 빼앗긴 주인공의 비운은 영화적으로 볼 때 충분히 흥미롭다. 게다가 그 발단이 아버지의 야망 때문이라니 이 얼마나 써먹기 좋은 플롯인가. 운명과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은 스스로는 말 할 수 없이 괴롭겠지만, 적어도 관객들에겐 흥미유발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 자식을 버리고 꿈을 실현하겠다는 아버지와 자신의 몸을 찾아 48마리의 요괴를 찾아 나서는 아들, 그리고 언젠가는 마주칠 두 사람. 결과적으로 감독인 시오타 아키히코는 이 영화가 패륜과 인륜의 경계선을 잘 타야만 균형 잡힌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별다른 스펙터클 없이 긴 시간이 할애된 두 사람의 마지막 대면에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머뭇거림에는 그런 고민들이 묻어난다.

그러나 이 때문에 <도로로>는 각 부분들이 따로 노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볼만한 CG와 괴담류의 이야기가 잘 어우러진 초반이 관객들의 시선을 일단 붙잡았고, 영화의 중반 특촬물 수준의 요괴퇴치 메들리가 영화의 코믹한 감수성(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을 보여줬다면, 이 비극적인 마지막 대결의 온도는 분명 앞부분들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서로를 죽이지 않으려 애쓰는(그래서 윤리적인 잣대를 빗겨가려는) 등장인물의 노력이 갑자기 너무나 진지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화의 감성이 비극을 뿌리로 세워져 있다는 걸 알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클라이맥스가 초반의 흥미로움과 중반의 코믹스러움 뒤에 찾아오는 지루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차라리 영화 초반에 쏟았던 물량을 이 후반에 써먹었다면 좋았을 것을.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니 비극이고 뭐고 느낄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결국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20대 중후반의 나이로 온갖 귀여운 척을 도맡아 하는 시바사키 코우의 열연(?) 뿐이다. 아, 또 하나가 있다면 영화의 엔딩에 등장하는 “나머지 24마리(残り二十四体)”라는 자막 정도.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설마(!) 좀 더 낫겠지, 라는 바람 때문이기도 하고, 드디어 영화가 끝났구나, 라는 안도 때문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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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언급하는 장면이지만, 햐키마루와 도로로가 요괴들을 일괄퇴치(?) 하는 부분에서 느꼈던 왠지 모를 기시감의 정체를 알았다. 무술감독이 정소동이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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