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cancy / 베이컨시 (2007) - 익숙하지만 재밌는 스릴러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때는 한밤 중. 고속도로를 달리다 지름길로 길을 튼 폭스 부부의 차 안엔 차가운 기운이 가득하다. 데이빗(루크 윌슨)과 에이미(케이트 베킨세일)는 아들 찰리를 잃은 슬픔으로부터 비롯된 서로간의 오해로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다. 지름길을 찾으려다 길을 헤매고 있는 데이빗을 비꼬는 에이미와, 아픔을 잊으려는 아내에게 자꾸만 아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이빗. 가로등 하나 없이 적막한 도로의 어둠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두 사람. 운전대를 쥔 데이빗이 지름길(로 생각되는 알 수 없는 길)로 접어든 바람에 이 두 사람은 그야말로 어둠에 내던져진다. 보이는 것은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숙박시설을 겸한 주유소 뿐. 이곳에서 도움을 받아 낯선 곳을 벗어나려는 두 사람의 시도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그리고 이곳은 그저 외딴 곳의 평범한 주유소일까.


어두운 밤, 어딘지도 모를 낯선 곳을 헤매고 있는 주인공들을 관객의 입장에서 즐겁게 바라본다는 것은 분명 고약한 취미다. 영화가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들이 어서 빨리 위험에 처하기를 바라는 관객의 마음은 ‘고약하다’는 말 이외에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비록 영화 스스로도 명백히 그런 의도(주인공의 고통을 즐기라는)를 가지긴 하지만 말이다. 그동안 많은 영화들에서 수없이 써먹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긴장감을 던져주는 데 여전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 같은 설정은 영화 <베이컨시>에서도 여실히 반복된다.

 


하지만 공포영화나 스릴러장르에 반복되는 구성과 소재를 사용했을지라도 의외로 잘 만든, 그래서 관객에게 일정 이상의 만족감을 주는 영화들은 분명 존재한다. <베이컨시>는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프로젝트도 아니고, 이야기 자체도 한정된 장소에서 모두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언뜻 관객의 관심을 끌기엔 부족해 보이지만, 이 영화는 한편의 잘 조직된 ‘즐길거리’로 손색이 없다. 스릴러장르에 어울리는 기본적인 소재들, 즉 낯선 공간과 낯선 인물, 수수께끼 같은 장소, 때 맞춰 다가오는 공포의 순간들, 일시적이지만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놀램, 보일 듯 말 듯 느껴지는 유머 등이 <베이컨시>에는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헐리웃의 거대 영화들에 비해 마치 소품 같은 <베이컨시>의 매력은 이런 장르 취향의 관객에겐 충분히 다가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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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시>가 긴장감을 구축하는 방법은 익숙하다는 의미에서 비교적 고전적이다. 예를 들어 관객에겐 범인들이 다가옴을 미리 보여주고 정작 주인공들은 모르게 하는 것이나, 낯선 이가 베푸는 호의의 이면에 담긴 의뭉스러움을 관객이 미리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들, 그리고 많은 피를 보여주지 않고도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를 곁에 둔 듯한 위태로움을 은근슬쩍 던져주는 방식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장르의 특성들을 모두 사용하면서, 그리고 아무리 그 사용의 타이밍이 적절하더라도, 이러한 구성의 영화는 너무나 익숙해서 하품만 나온다는 관객들을 위해, <베이컨시>가 마련한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자세히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뭉뚱그려 말하자면, 공포물이나 스릴러에서 주로 사용되는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루크 윌슨의 다소 익살스러운 캐릭터, 그리고 케이트 베킨세일의 여전사 이미지(물론 <베이컨시> 전반에 걸쳐 강인한 이미지는 전혀 보여주지 않지만)와 결합하여 흥미로운 반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제대로 구성된 영화의 짜임새와 함께, 이 같은 점이 영화 <베이컨시>를 익숙하면서도 재밌는 스릴러영화로 만드는 데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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