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wulf / 베오울프 (2007) - 테크놀로지와 함께 진화한 영웅담

역시 화두는 이야기와 테크놀로지다. 때론 취향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부실한 이야기와 뛰어난 비주얼의 기묘한 비례관계를 너그러이 인정하는 관객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에 놀라곤 한다. 2시간 안팎의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 자체의 반짝임에 몰두할 것인지, 아니면 스크린에 펼쳐지는 문학적 서술에 주목할 것인지는 어차피 관객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이 둘이 보기 좋게 결합하기를 바라는 관객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사실엔 여전히 의문이다. 영화를 철저히 상업적 측면에서 바라보더라도, 내게는 그것이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긍정의 태도’로 여겨지기에 앞서, 보다 나은 상품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독 최근의 영화들 중에서 어느 한 요소, 특히 영화의 비주얼이나 테크놀로지에 집착하는 태도에 비해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영화가 소홀히 할 때, 수많은 관객들이 보여준 관용(寬容)은, 영화라는 매체와 그 수용자들 사이에서 실시간으로 발생하고 있는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그 중에 나의 태도도 포함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태생적으로 이러한 논의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외양을 가진 로버트 저메키스의 <베오울프>는 결국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즉 어떤 요소가 영화라는 매체를 설명하는데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따라 그 감상이 다양하게 갈라질 수 있는 영화다. 이는 이 영화가 수도 없이 반복되어온 영웅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최첨단의 테크놀로지가 투입된 신구(新舊)의 조합물이기 때문이다. <베오울프>를 보기 전, 관객은 선택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자신이 ‘너그러운’ 관객이 되어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어느 한 부분(역시 비주얼)에 한정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예고편과 소문만으로는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은 영화의 서사에도 시선의 한쪽을 어김없이 드리워야 하는지의 두 가지 갈래 중에서 말이다.

 


일단 전자를 선택하더라도 <베오울프>의 시각적 쾌감은 놀라운 수준이다. 각종 매체가 알려주듯, 그동안의 3D 애니메이션에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었던 캐릭터의 시선의 처리까지 능수능란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기술력과, 눈밭의 반짝임까지 묘사하는 세세한 표현력, 그리고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캐릭터의 구현은 러닝타임 내내 보는 이의 눈을 잡아끈다. 특히 아예 실사처럼 보이길 바랐던 관객들에겐 다소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퍼포먼스 캡처에 참여한 실제배우들과 흡사한 영화 속 등장인물들(주인공 베오울프 정도를 제외한다면)을 보고 있노라면, <베오울프>가 미래형의 영화제작 형태를 일찌감치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될 정도다. 즉 영화배우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액션씬을 촬영하지 않아도 되고, 간단한 기술적 조작으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줄 수도 있는 그런 시대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삭막한 감도 들지만 로버트 저메키스같은 실험가들이 존재한다면 그리 불가능한 미래도 아니다.


그렇다면 <베오울프>의 내용은? 작자미상의 8세기 문학작품으로부터 21세기로 건너온 이 이야기는, (지금의 시점에서) 어떤 등장인물을 대입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일이 없을 것 같은 기본설정을 두 작가(로저 애버리와 닐 게이먼)가 살짝 각색함으로써, 자칫 기술에 함몰될 뻔한 스토리를 건져낸 셈이 되었다. 긴 시간을 무대로 한 이 영웅의 활약상은 지금의 시대상에 맞게 변화되었다. 저메키스의 <베오울프> 속 베오울프(레이 윈스톤)는 영웅임에도 영웅이 아닌, 마치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같은 현실의 아이러니로 점철된 현대적 캐릭터다. 그는 악의 유혹에 쉽게 굴복당할 만큼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이며, 욕망과 신념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당연히 <베오울프>가 이 주인공을 가지고 펼치는 이야기 또한, 더 이상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고정된 박제 같은 영웅담은 아니다. 영화에서 흐로스가(앤써니 홉킨스)에서부터 시작되어 베오울프와 위글라프(브렌든 글리슨)로 이어지는 영웅의 세습은 악의 세습과 대구를 이루며 묘사된다. 이 둘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끝없이 엮이며 반복되는 것이다. 아니, <베오울프>에서는 영웅의 세습이 곧 악의 세습이다. <베오울프>의 서사는 단순히 선한 영웅과 악의 대립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앙화(殃禍)를 드러냄과 동시에, 영웅과 권력의 달콤한 상관관계가 빚어낼, 비극의 끝없는 순환을 암시한다. 이쯤에서 관객들은 지금 이 순간 이 영웅의 모습이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로버트 저메키스의 <베오울프>는 기술적 성취만으로도 상징적인 영화일 수 있다. 아마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일개 관객인 내가 미처 알 수 없는 영화 기술적 발전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베오울프>를 단순히 테크놀로지에 의존한 빈약한 이야기의 영화로 규정하는 태도는, 작품 안의 시의적절한 상징들을 애써 무시하는 것 같아 아쉬울 듯하다. 벌써부터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만 봐도 <베오울프>의 풍부한 상징성은 입증된 셈이다. 한 단계 올라선 영화적 기술이 새 옷을 입은 옛날이야기와 함께 찾아왔다. 말하자면 <베오울프>는 구세대의 이야기에 현대적 주석을 말끔히 삽입한 후, 그것을 놀라운 신기술로 포장한 영화다. 이것은 테크놀로지와 함께 새롭게 진화한 영웅담이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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