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ave One / 브레이브 원 (2007) - 범죄와 단죄, 그 모호한 경계

아련한 추억이 깃들었던 도시가 죽을 것 같은 공포의 공간으로 뒤바뀌는 데에는 단 하루면 충분했다.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을 잃은 후, 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이 느끼는 도시의 공기는 포근하고 따뜻했던 것에서 냉정하고 두려운 것으로 바뀐다. 뉴스에서만 들었던 남들의 불행이 자기 것으로 되어버린 이 순간, 도시는 숨겨왔던 그 잔인한 얼굴을 드러내며 현기증을 유발한다. 총을 든 여자는 이 바뀐 환경에 적응할 새로운 자신을 만들기 시작한다. 범죄를 향한 범죄가 계속 될수록 눈 화장은 짙어지고, 손 떨림은 사라진다. 여자는 스스로 단죄의 방아쇠를 당긴다.


닐 조단의 <브레이브 원>은 기본적으로 범죄에 대한 공권력의 무능함을 타파해 줄 개인을 갈망했던, 과거의 범죄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대개는 근육질이나 마초 이미지의 남성에게 그 임무를 지웠던 과거와는 달리, <브레이브 원>은 깡마르고 가냘픈 여성이 그 주인공인 것이 다를 뿐이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이 걷는 복수의 여정은 그 목적 자체에 정조준 되어 있지 않다. 에리카 베인이 자신의 애인을 죽인 자들을 찾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다른 범죄자들은 사실 그녀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브레이브 원>은 단지 복수극의 주인공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치환한 것만으로 심리적 긴장감을 끌어내는 데 제 역할을 다했으리라 만족하는 영화가 아니다.

 


에리카 베인의 범죄(!)가 관객을 동요시키는 방식은 마치 뉴스가 우리의 얕은 정의감을 건드리는 방법과 같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범죄사실에서 피해자에 대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낀다고 믿지만 사실은 대부분 착각이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것은 범죄자에 대한 공동의 분노이며, 범죄자의 처벌을 통해 일종의 안위의 감정을 얻고 싶은 것뿐이다. 이것은 영화에서 사건의 추이를 알기 위해 경찰서로 갔던 주인공이 접수창구에 앉아있는 경찰로부터 받는 인상에서도 드러난다. 사무적인 태도의 그 경찰처럼 우리가 에리카 베인의 비극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피해 당사자, 혹은 전에 똑 같은 일을 겪었던 이가 아니라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브레이브 원>은 에리카 베인의 행복했던 순간과 비극의 순간을 교차로 편집하며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녀와 그녀의 애인에게 폭력을 가했던 이름 모를 범죄자들에 대한 분노는 사실 피해자와의 동질감에서 온 것이라기 보다, 사회적 안정에 대한 무의식적인 우려와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 형성되는 집단적인 분노의 감정이다. <브레이브 원>이 암시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 가져오는 결과의 불확실성이다. 이것은 피해자였던 에리카 베인을 다시 범죄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영화가 에리카 베인을 피해자인 동시에 되도록이면 선한 범죄자로 묘사하고 싶어함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그녀의 행위를 철저히 긍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것은 우발적인 살인을 정의감에 찬 단죄의 행위로 정당화하는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으로부터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증거는 주인공이 라스 베이거스 출신의 창녀를 구해내는 과정 중 차량이 그녀를 덮치는 장면 등에서 작게나마 발견된다. 에리카 베인의 행위가 정당하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해결할 긍정의 결과로 반드시 귀결되는가. 그것은 아무도 예측 못할 결말을 불러올 수도 있다.


때문에 <브레이브 원>은 복잡한 영화가 된다. 영화로부터 우리가 얻는 일차적인 감정은 마치 게임 속 악당을 물리치는 쾌감처럼 단순한 반면에, 사실 에리카 베인의 행위는 철저히 선한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이 영화가 명분이 빗나간 보복전쟁이나 인권을 시험대에 오르게 하는 사형제도에 관한 메타포로 읽힐 여지를 남겨둔다. 복수 또는 살인의 정당함을 유지시켜 줄 방법은 엄밀히 말하자면 없지만, <브레이브 원>은 그것의 마지막 가능성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일대일 대면을 내놓는다. 그러나 정치적인 쟁점과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힌 현대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이렇듯 순수한 형태의 맞대면은 없다. 영화가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는 고뇌나 폭력의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같은 것이 <브레이브 원>의 갈등을 반영한다. 영화는 명확한 결론을 의식적으로 피해간다.

어쩌면 <브레이브 원>은 우리에게 총을 들려주고 ‘당신이 에리카 베인의 입장이라면 어쩌겠는가’라고 단지 묻고 있을 뿐일지 모른다. 영화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비유들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의 대답을 요구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그 대답 또한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 하나다. 지금 이 순간, 영화가 내놓은 여러 가지 질문지 중 유독 어려운 것을 뽑아 든 관객 뒤에서 웃고 있을 <브레이브 원>을 상상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건 범죄와 단죄의 정당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우리를 비웃으며, 그저 관객의 얄팍한 정의감을 시험하는 가벼운 스릴러였을 수도 있으니까.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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