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攻 / 묵공 (2006) - 전쟁을 바라보는 이상적인 시선

장지량의 <묵공>은 전쟁을 무대로 한 사극의 스케일에 집중하면서도, 한편으론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시지를 택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영화다. 물론 이 작품이 원작인 일본만화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야기의 대부분이 원작자에 의해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해서 원작과의 비교우위만을 따지기엔 <묵공>은 아까운 영화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함락의 위기에 빠진 한 성의 방어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단순히 대규모의 엑스트라와 CG를 동원해 만들어낸 공성전의 스펙터클만이 아니다.


박애를 지상과제로 삼았던 묵자의 제자 혁리(유덕화)가 조나라의 10만 군대가 지나가게 될 양성에 도착한다. 양나라는 그들의 성을 조나라의 군사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혁리의 방어전술을 믿을 수 밖에 없다. 혁리의 전술이 조나라의 공격을 차츰 막아내기 시작하자 민심은 혁리를 영웅으로 떠받들기 시작한다. 한편 조나라 군대의 장군 항엄중은 혁리에 못지않은 지략으로 성의 공략을 준비한다. 양성 안에서는 민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혁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신하들의 이간질이 시작된다. 전쟁으로 수많은 상처들이 생겨나지만 권력의 맨 위층은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하기 바쁜 반면, 백성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간다. 과연 혁리의 방어술은 양나라의 백성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쉴새 없이 이어지는 전투로 죽어나가는 군인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혁리는 망연자실한다. 위 아래 없이 모두를 사랑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생각해볼 때, 누군가의 욕망에 의해 소리 없이 사라지는 민초들의 비명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광기의 충돌이다. 지배자들의 욕망이 민심을 광기로 물들이는 것이다. 생존의 위협 앞에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생물은 어느 것도 없다. 백성들은 살아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집단의 논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적뿐 아니라 반역자와 배신자는 돌팔매의 대상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살인에 대한 윤리적 잣대가 전쟁으로 인해 철저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쟁은 민초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남는 것은 겉잡을 수 없는 살기와 권력자들의 더러운 욕망의 껍질뿐. 혁리는 전쟁에 승자와 패자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만 가능한 많은 백성, 까닭 없이 이 전쟁에 뛰어든 민초들이 살아남길 원했다.


<묵공>은 성문을 두고 사막 같은 벌판에 대치하고 있는 두 세력의 충돌 자체에 몰입하게 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약자가 강자에 대항해 살아남을 때의 쾌감을 전해주곤 있지만, 영화의 결말은 어차피 이 두 세력이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 각자의 꼭대기 층에서 권력의 말장난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추한 모습은 약자인 양성의 내부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양나라가 혁리의 혁혁한 공로에 의해 살아남을 기회를 잡았으면서도 결과적으로 패망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나라를 구성하는 백성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지배세력은 역사에서 쉬이 지워지게 된다. 이상적인 영웅신화에 얼마간 기대고 있는 혁리의 활약상은, 또한 전쟁을 바라보는 정당한 시선이 존재하기에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 전쟁의 피해자는 결국 힘없이 쓰러지는 민초들임을 기억하고, 권력의 허망한 종말이 무엇인지 확인하라는 것이 <묵공>의 메시지다.

* 이미지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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