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 / The Happening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샤말란의 영화 속 반전에 대한 강박은 이제 관객의 몫이 되어버렸다. 감독은 이미 영화의 내용을 통째로 뒤흔들 반전 따위,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버렸는지 모른다. <해프닝>은 샤말란이 오랜만에 호되게 뒤통수를 가격해주리라 기대한 관객들에게 기대 이하의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충격적인 반전 같은 것은 품고 있지 않으니까. 다만 언제나 그렇듯 <해프닝>에도 초현실적인 현상에 대한 감독의 관심사가 표면화되어 있고, 별다른 공포장치 없이도 관객을 숨죽이게 만드는 그의 탁월한 연출력이 살아있다. 샤말란의 영화를 반전의 유무(혹은 그 강도)로만 평가하는 것은 결국 충족되지 않은 기대감에 실망만 느낄 관객의 손해로 고스란히 돌아올 뿐이다.


환경재앙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도 읽힐 수 있는 <해프닝>은 일단 감독의 전작들과 조금 다르게 충격적인 비주얼을 전면에 내세운다. 시각적 공포보다 심리적 불안을 주무기로 했던 그의 다른 영화들과는 언뜻 그 전략이 달라 보인다.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일상 중에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간다. 비록 피 칠갑의 시체들은 보이지 않지만 아무 까닭 없이 서서히 시체로 변해가는 집단의 모습(혹은 그 과정)은, 바라보는 것, 상상하는 것만으로 공포다. 그러나 영화는 사실 이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내는 것 보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선택된 주인공 무리들의 심리적 흐름에 더 관심이 있다. 이것은 마치 추상의 존재인 죽음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된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처럼 이 불가항력의 대상을 극복하려 애를 쓰는 인간의 무력함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의 그 샤말란식 반전포인트가 없다는 것과 함께 <해프닝>을 향한 비난의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한 영화적 설명의 부족일 것이다. 그러나 <해프닝>을 명쾌한 과학적 주석이 충만한 그런 영화가 아니라, 인간을 위협하는 자연현상과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이라는 구도에 집중해서 보자면 관객은 편해진다. 즉 주인공 일행에게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설명을 뒤로 하고, 주인공 엘리엇(마크 월버그)과 그 아내 엘마(조이 데샤넬)의 삐걱거리는 인간관계가 이 위기상황 앞에 어떻게 변화해가며 또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은 죽은 친구의 딸과 함께 하나의 유사가족을 이루는데, 영화의 끝자락, 이들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 상심한 서로를 보듬으며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직면한 문제의 해결책이 됨과 동시에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공동체의 이상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로간의 오해와 반목을 용서와 화해라는 도구로 해쳐가는 공동체의 확립. 이것이 인물들의 생존과 직결되면서 자그마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 일행을 최소 단위로까지 만들도록 공동체의 크기를 계속 줄여나가는 감독의 의도다. 그러니까 소수가 될수록 죽음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마지막 세 명의 구성원이 남을 때까지 캐릭터간의 불신을 키워가는데, 이는 관객이 영화 속 인물들의 위기에 있어서 서로간의 믿음과 이해가 최적의 해결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하기까지 감독이 깔아놓은 힌트의 연결점이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인간은 서로를 비난하거나 의심하기 시작하고 거꾸로 그렇게 무력한 자신들을 재발견한다. 엘리엇 일행이 마주치는 것은 적어도 가족이라는 최소단위 안에서 믿음과 이해가 사라질 때엔 그 어떤 다른 해결책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남는다.

<해프닝>은 샤말란의 실패작으로 여기기엔 조금 아까운 영화다. 여기엔 화장실에 편안히 앉아있을 때조차 본인도 모르게 움찔움찔 떠오를 충격적인 반전 같은 것은 없지만, 한동안 고이고이 곱씹어 볼만한 작은 메시지와 관객을 서서히 조여오는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담겨있다. 영화 <해프닝>은 환경의 반격을 넋 놓고 기다리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경고, 그리고 가장 작은 사회적 단위에서조차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우리들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다 죽음이라는 괴물과 나약한 인간이 서로 쫓고 쫓길 때 발생되는 영화적 긴장감을 덧붙여 놓은 것이다. <해프닝>에서 <식스센스>의 재탕을 기대했다면 차라리 후자의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이 낫다. 하지만 <해프닝>은 반전 따위 없이도 여전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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