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 The Dark Knight

<다크 나이트>는 이미 고담시의 압도적인 분위기를 훨씬 웃도는 거대한 명성을 순식간에 얻어냈다. 직업적인 평론가건 단순한 영화광이건 배트맨의 골수팬이건 간에 누구든 서로 앞다투어 이 작품을 칭송하는데 여념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아마도 이 작품 이후 어떤 영화를 만들든지 <다크 나이트>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감독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조금 비관적으로 묻자면, 자칫 그의 필모그래프의 꼭지점이 여기에서 멈출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대답이 나온다. 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황홀한 영광 뒤에 따라올 무지막지한 기대감. 공교롭게도 나는 이미 수많은 소식들을 접하고 기대감에 들뜬 상태에서 <다크 나이트>를 감상한 셈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더라’는 말은 적어도 이 검은 박쥐 날개를 펼치고 마천루를 횡단하는 사나이의 이야기에는 적용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먹을 것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걸작’이라는 수식어는 아끼고 싶다. 놀란의 이 훌륭한 시리즈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제 겨우 두 번째 작품에서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지나친 기대감 때문인지 몇몇 부분에서 몰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트맨 비긴즈>는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설레는 마음으로 감상하기에 충분한 결과물이었다. 차가운 표정 속에 욕망과 절제, 정의와 불의의 이중성을 모두 담고 있는 듯한 크리스찬 베일의 배트맨은 그 자체로 만족이자 희망이었다. 여기에 기존 시리즈의 모든 색깔을 지워버리고 이 박쥐사나이의 활약상을 어둠침침한 도시의 뒷골목 이야기로 몰아가는 놀란의 뚝심에도 호감을 느낄만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한숨 돌릴만한 장면들을 곳곳에 배치했던 <배트맨 비긴즈>에 비해 <다크 나이트>는 완전히 심연으로 가라앉은 듯한 무거운 분위기로 일관한다. 세 명의 주요 캐릭터가 서로 물고 물리는 이 범죄드라마는 등장인물 그 자체인듯한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관객의 심리를 쥐었다 놓았다 한다. 여기에 여타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아예 대놓고 판타지처럼 연출하는 CG의 활용에 있어서도 <다크 나이트>는 그럴듯한 현실감의 보조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놀란의 의지는 <배트맨 비긴즈>에서와 마찬가지로 <다크 나이트>를 현실에 있을 법한, 아니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어두운 영웅 이야기로 만들어내려 했다.

 


그러나 여기서 약간의 부조화가 발견된다. 놀란의 배트맨이 다른 히어로들과 다른 지점이 판타지에서 멀리 떨어진 듯한 그 현실성에 있다면 조커의 출현은 오히려 진정한 초인의 탄생처럼 보인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행동한다는 조커의 말은 사실상 모순이거나 의도된 거짓말로 그의 모든 행동은 철저한(이 수식어로도 부족하다, 그의 계획은 ‘완벽’ 그 자체다) 계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는 언제나 배트맨과 하비 덴트, 혹은 고든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몇몇 실패지점이 보이긴 해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의 계획이 완벽히 봉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언제나 주인공들의 뒤통수를 치는 조커는 <다크 나이트>에서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다. 더욱이 그의 탄생과 성장배경에 대한 일말의 단서조차 던져주지 않는 영화의 불친절함 때문에, 무기학과 심리전에 능할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모르는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범죄세계의 조물주가 되는 것이다. 선과 악, 혹은 자본주의와 범죄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을 담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다크 나이트>는 조커의 존재 때문에 오히려 <배트맨 비긴즈>보다 현실에서 떨어져 있는 작품처럼 여겨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부분이 간혹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크 나이트>에서 순수하게 열광한 부분이 있다면 박살이 난 텀블러에서 배트포드가 튀어나오는 장면 정도일 것이다. 슈퍼히어로를 다룬 영화가 제공했으면 하는 영웅에 대한 두근거리는 설렘이 그대로 표출된 부분이다. 이 장면은 또한 복수의 감정으로부터 출발한 폭력성, 그리고 무모한 정의감으로 점철된 배트맨의 치기 어린 남성성을 드러내면서도, 마찬가지로 남성관객의 그것을 건드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도 솔직해야 한다. 승용차 정도는 두 동강 낼만한 묵직한 바퀴와 온갖 화기가 차체를 장식하는 배트포드는 거부하기 힘든 매력적인 기체임이 분명하니까. 낮은 자세로 배트포드를 타고 주차된 차량을 박살내며 나아가는 배트맨의 모습을 넋 놓고 본 것은 비단 영화 속 소년들뿐만이 아니었다.

풍부한 철학적 성찰과 범죄드라마의 매끈한 모양새를 자랑하며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다크 나이트>는 그 ‘잔칫상’의 몇 가지 음식으로 가벼운 소화불량을 유발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조커의 캐릭터가 그렇고, 뚜렷한 클라이맥스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숨쉴 틈을 주지 않는 이야기의 맞물림이 그렇다. <다크 나이트>는 관객을 지치게 한다. 이것은 작품의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두 시간 반 만에 정신적 탈진 상태를 맞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진지한 속내 속에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다크 나이트>는 관객이 쉬어갈 만한 정거장이 될 수 없다. 가히 슈퍼히어로 영화로서는 드문 경험이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찬사가 따라붙는 <다크 나이트>가 후대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도 궁금하다. 과연 그 명성을 더욱 확장시킬지 아니면 또 다른 평가들이 고개를 내밀지. 만약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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